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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으악새와의 짝사랑에 마침표를

민경탁(시인·한국대중음악박물관 연구위원)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4월 02일
ⓒ 김천신문
초봄 냇둑을 걷다가 억새숲을 만난다. 아직 초록빛 생기를 입지 못한 억새는 쓸쓸해 보인다. 바람에 제 어깨나 옷깃을 부딪는 소리 없이 무리 지어 서 있다. 여름이면 초록빛 풋풋한 생기를, 가을이면 서걱서걱 울음소리를 낼 것이다. 경기 방언에서 ‘으악새’라고도 하는 억새는 ‘억세다’와 ‘새’(풀을 통틀어 일컫는 말)가 합성된 말로 알고 있다. 나물새가 남새 된 것처럼.

평안 방언에서는 왜가리를 ‘으악새’라 한다(이희승, 국어대사전). 으악, 으악 하는 의성어가 들어간 이 말은 고복수가 부른 가요 “짝사랑”에도 나오는데 여기서 ‘으악새’는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가요사의 마스터키라 일컬어지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 생존 시 이에 대해 가요작가 사무실에서 여쭈어봤더니 ‘으악, 으악’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보통의 새쯤으로 여기고 작사했을 것이란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가요 “짝사랑”은 박영호(필명 처녀림)이 작사했다. 그는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성장, 소설가 이선희와 결혼하며 서울에서 작가활동을 했다. 원래 극작을 하다가 가요 작사로 전향, 조명암(본명 조령출)과 쌍벽을 이뤄 명곡을 많이 제작했다, 두 작가 모두 해방 이후 월북, 박영호는 1952년 병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때까지 주로 가수활동을 하던 진방남(작사가 예명 반야월)은 6·25 전쟁 후 작사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모두 한국 대중가요 개화를 이끈 가요작가들이다.

작사가 박영호(필명 처녀림)

일제강점기 우리 가요를 이해함에는 작사 이론 하나가 필요하다. 당시의 작사가들이 흔히 구사하는 이완법(弛緩法)이다. 일제 권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제목에서 어떤 직감을 줘놓되 본문에서 그 내용을 이완시켜 부차적으로 처리하는 작사 기법. 제목은 그 시대의 관심사를 표방하지만 본문에서 상징성을 넌지시 축소, 우회하는 것이다. 가요 이난영의 “불사조”, 김용환의 “춘몽”, 고복수의 “짝사랑”,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이 그런 수사법이 적용된 작품들이다. 고려성(본명 조경환)도 이완법을 잘 썼다.

고려성이 작사한 “나그네 설움”에서의 ‘나그네’는 지원병 제도에 의해 고향을 떠나가는 젊고 뜻있는 조선의 젊은이 내지는 국권을 상실한 우리 민족을 비유한 것이다. “번지없는 주막”에서의 ‘번지 없는 주막’은 국명도 좌표도 사라진 조국, ‘창살’과 ‘태질’은 감옥 속에서 억압당하는 것 같은, 우리 민족의 고통이 절절함을 비유한 시어다. 그 당시 ‘사막’이란 단어가 들어간 가요가 많이 나왔는데 마찬가지다. 이런 가요에 등장하는 어휘를 단순히 사전적, 일차적 의미로만 받아들여선 노래가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인다 할 수 없다.

그럼 박영호가 작사하고 손목인이 작곡, 고복수가 불러 탄생한(오케레코드사, 1936. 12) 가요 “짝사랑”에서의 ‘으악새’의 원관념은 무엇일까. 경기 방언에서는 억새를, 평안 방언에서는 왜가리를 가리키는 데에서 관련 논쟁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가 주로 가요 작가생활을 한 곳은 물론 서울이었다. 문맥과 배경과 분위기로 봐 ‘왜가리’나 ‘억새’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충분해지는 작품이다.

가요 '짝사랑'이 실려 있는 고복수걸작집 음반 재킷(지구레코드사)

이 가요의 작사가로부터 가사를 받아 곡을 붙인 손목인 선생의 설명을 들어볼 일이다. ‘으악새’는 일제에 시달려 우는 우리 민초(民草)를 상징, ‘가을인가요’란 물음은 쓸쓸해진 우리 강산의 덧없음에 대한 반문이라 했다(손목인, “손목인의 인생 찬가-못다 부른 타향살이”, HOT WIND). 사랑한단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조국을 향한 애정, 표현할 수 없는 애정이니 ‘짝사랑’이라 제목해 놓고 본문에선 세속적인 남녀의 그것으로 그려낸 것이다. 애수 가득 찬 이 노래를 애수 어린 고복수 가수의 목소리로 전파하니 많은 민중이 애수를 달래며 불러 “타향살이” “사막의 한” 등과 더불어 그의 대표곡 중의 한 곡이 되었다.

작사가 김지평 선생도 이와 동일하게 해설을 한다. 사랑한다 말 할 수 없는 조국을 향한 사랑을 세속적인 짝사랑으로 이완 표현한 것이라고. 가사에 깃들어 있는 원관념들을 더 캐어내 보자. ‘으악새’(억새풀)는 일제에 시달려 우는 이 땅의 민초, ‘가을’은 국권을 빼앗긴 쓸쓸한 시절, ‘지나친 세월’은 일제 강점 이전의 세월, ‘이즈러진 조각달“은 가물거리는 국운, ’잃어버린 그 사랑‘은 나라와 국민 사이에 실종된 사랑, ’임자 없는 들국화‘는 나라와 국권 없는 국민의 고독한 초상이라 한다(김지평, 한국 가요 정신사, 아름출판사).

한국 민족은 가요 애호 습성을 뿌리 깊게 지니고 있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같이 아침이나 심야 구별 없이 가요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민족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한민족의 가요 애호 문화는 역대 중국의 많은 고대사에서 적시해 온 바다. 21세기 들어 한국에서 H. O. T., 원더걸스, 소녀시대, 싸이, BTS 같은 글로벌 가수들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편으로 가요를 얕잡아보는 의식을 지녀 이를 연구, 학술화 하지 않아 왔다.

가요 “짝사랑”에서의 '으악새'를 두고 문인, 어학자, 가요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중구난방으로 일어 왔다. 이제 그 소모적인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가요 “짝사랑”에서의 '으악새'는 억새로써 일제강점기 시달려 우는 우리 민초를 비유한 말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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