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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화양연화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나오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2시간 30분을 달려 경북 선산에서 대학 동기들과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입문 3주째인 파크골프를 4시간가량 즐겁게 쳤다. 김천 아포에 사는 한 친구가 슬그머니 오더니 자기 농장에 가자고 한다. 김장김치를 담았는데 나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고. 그 친구의 농장 이름이 화양연화이다. 가장 좋은 시절ㆍ꽃다운 청춘ㆍ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들었다. 언제냐고 물으니 지금이란다. 하긴 제일 비싸고 가치 있는 금이 지금이라는 말도 있고, 가장 젊은 시절이 현재 상황에서 지금이니 맞는 말이다.”
대구교육대학교 20회 동기로 부산에 사는 박정훈 친구가 2026년 3월 5일 목요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시작 부분이다. 대구교육대학교 20회는 1981년에 입학했는데 2년제 교대의 마지막 세대이다. 600명 입학생 중에 남자는 120명이고 여자는 480명이었다. 대부분의 남학생은 학군하사관후보생(RNTC)으로 교내에서 일주일에 6시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방학 때는 50사단에 입영해서 훈련을 받았다. 2년 동안 고등학교 같은 빡빡한 강의와 군사훈련 받고 경향각지에 발령을 받았다. 박정훈 친구와는 대구교대총동창회 체육대회에 만나거나 부산에 출장을 가면 만나곤 했었다. 2014년 영호가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할 때 진상배 동기의 주선으로 배구 모임이 결성되어서 매달 한 번씩, 많게는 50여 명이 모여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파크골프 모임도 결성이 되었고, 오래전에 결성된 골프 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다시 박정훈 친구의 글이다.
“대학 때부터 학생회장으로 모범적인 친구, 교사, 교감, 교장 때 항상 솔선수범하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고, 학교는 시작도 끝도 수업이라는 최고의 목표였던 교직의 삶을 살았다. 책도 여러 권 집필했다. 『수업?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책 외에 교육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이다. 여러 권의 책의 내용이 다양하지만, 읽어보면 체험하고 느낀 처절한 자기 고백이자 미래교육의 지향점을 장마다 펼치고 있다. 결국 도달점은 수업을 어떻게 하고 왜 하냐는 질문이고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감, 교장 때에도 수업공개를 하는 사람, 교장 때 자기는 머슴이라며 어려운 부탁해도 된다고 모든 힘듦 다 맡고, 교사들 수업도 해주고, 수업연구회도 만들어 뒤에서 말도 없이 교사들 서포터를 해주는 머슴이었다. 아이들과는 사랑과 열정으로 비 오는 날 맨발 축구를 하는 교장이었다. 가끔 막걸리를 한잔하며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와 교육청에 근무할 때 시작도 끝도 수업이라는 믿음이었다. 대구교육대학교 2학년 때 교육실습에서 국어과 갑종 수업을 자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구에 발령을 받아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공개수업을 자청했었다. 2000년대 이전에는 3월에 학년 구성이 되면 제일 기피하는 게 학년 수업공개이고 다음이 운동회 때 무용이었다. 장학사로 근무할 때도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마지막에는 영호도 모든 선생님을 모시고 공개수업을 했다. 교감이나 초등교육지원과장을 하면서도 수업컨설팅이나 강의를 할 때는 직접 수업을 하는 시간을 넣었다. 교장을 할 때는 모든 학반에 1년에 4시간씩 수업하는 고정 시간표가 있었다. 그러면서 수업문을 열자고 했다. 수업문은 교실을 여는 것이다. 교실을 여는 것은 선생님의 수업을 열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선생님의 마음을 여는 게 수업문을 여는 디딤돌이라고 했다. 수업친구, 집밥 같은 수업, 분필 한 자루 수업 등을 설파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수업문을 열듯이 나의 인생문 또한 국으로 열면 어떨까. 또, 친구의 글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땅에 묻은 김장김치 꺼내준다. 감태나무도 잘게 썰어서 주며 차를 끓여 먹으면 만병통치라고 한다. 연수목이라고도 하여 목숨을 이어준다는 이름이다. 이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다니면 좋다고 손수 깎은 지팡이도 하나 얻었다. 지팡이를 선물 받았으니 오래 살겠다. 그밖에 여러 가지를 한 보따리를 싸준다. 받기만 하고 나왔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얼굴도 말끔하고 인성도 좋고 학구적인 엘리트이지만, 표시가 없는 과묵한 사람, 남의 슬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사람, 낮은 목소리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가끔 하하하 하면서 크게 웃는, 효도가 어떤 것이고…….”
퇴직을 하기 전에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퇴직하면 장(長)이 들어가는 것은 가장(家長)만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40여 년 동안 김천에서 구미에서 대구로 출퇴근했다. 멀리 다닌다는 핑계, 학교(특히 국립학교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에서 교사로 6년, 교감으로 2년, 교장으로 3년으로 근무하면서)가 바쁘다는 핑계, 장학사와 장학관의 일이 많다는 핑계로 가정과 아이들 교육에는 무관심이었다. 퇴직하면 그런 핑곗거리도 없거니와 가화(家和)에만 선택과 집중하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없던 핑계가 생겨서 배드민턴 동호회 회장은 2년을 마쳤고, 대구교육대학교총동창회장도 2년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을 하고서도 특별히 자청해서 모임을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초등학교와 김천고등학교, 대구교육대학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모임과 운동모임 등이 전부이다. 어쩌면 지금부터는 있는 모임도 슬슬 정리해야 할 때이다. 주로 페이스북에 그날그날의 일상을 공유하고 김천신문과 대구신문에는 다듬은 생각을 나누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인생삼락을 幼年之所遊歷壯而至則一樂也(유년지소유력장이지즉일락야). 窮約之所經過得意而至則一樂也(궁약지소경과득의이지즉일락야). 孤行獨往之地携嘉賓契好友而至則一樂也(고행독왕지지휴가빈계호우이지즉일락야)라고 했다. 즉 첫째,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오. 둘째, 가난하고 궁색하게 지내던 곳에 사회에 나아가 뜻을 이룸으로써 찾아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오. 셋째, 외롭게 홀로 지내던 곳을 마음 맞는 절친한 친구를 반가운 손님처럼 이끌고 찾아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지금 화양연화 농장의 터는 소작농이었던 부모님이 영호가 대신초등학교 4학년 때 구입한 땅이다. 6학년 때 초가집을 헐고 새집을 지을 때 흙벽돌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그 뒤에 부모님의 땀과 정성으로 사과밭이 되었다가 자두밭이 되었다. 부모님이 가시고 한동안 동생이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평생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반거충이 농사꾼이 된 영호가 정직하게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짓는 화양연화 농장이 되었다. 마을의 형님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커피 아니면 물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는 길목이다. 고향의 누구라도 괭이자루가 필요하면 가져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아버지가 도리깨를 만들었던 감태나무가 준비되어 있다. 더러 친구나 후배가 오는 날이면 손부끄럽지 않게 쥐여 줄 무엇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정훈 친구의 글로 「행복한 인생」다섯 편의 시리즈를 매조지 한다.
“아무튼 여러 방면으로 본받을만한 친구이다. 한편으로 그 친구의 성실함을 반만 따라갔다면 내 삶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부산으로 오는 길, 그의 삶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살다가 힘들고 지칠 때 찾아가 위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배울 점이 많다는 건 또한 더욱 좋은 일이다. 오래 건강하게 자주 보자. 화양연화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