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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제16회 샘문신춘문예 공모전 본상 특별작품상 수상작 - 부상고개

민병미(시인·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5일
ⓒ 김천신문
내가 가끔 가는 부상고개에는 칼국수와 메밀묵 밥을 하는 고만고만한 작은 식당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 부상고개에서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칼국수와 묵밥집들이 형성되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꽤나 알려져 있어서 이곳을 지나는 차량기사, 인근의 가구 공장근로자, 일부러 찾아오는 가족 또는 직장인 등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십여 년 전에 칼국수를 좋아하는 생질은 김천 지날 일이 있으면 꼭 부상고개에 들려서 칼국수를 먹고 간다고 했다. 언젠가 생질은 집안 가족과 함께 김천을 찾았고 우리 부부와 함께 부상고개 원조 칼국수 집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시누님 내외분께서 칼국수를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모여 음식을 서로 권하며 화기롭던 분위기가 떠오른다. 다시 모시고 싶어도 이젠 뵐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날은 칼국수를 좋아하는 남편과 묵밥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부상고개로 드라이브 겸 올라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원조 묵 밥집은 '금일 휴일'이었다. 그냥 돌아오기 아쉬운 마음을 바로 접을 수 있었던 건 '어탕 칼국수' 라고 유리창에 커다랗게 써 붙여져 있는 ‘빛고운 식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무언의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는 큰 장독 뚜껑에 부레 옥잠화나 물 배추가 둥둥 떠 있고 창 아래엔 백일홍과 분꽃, 봉선화가 피어있다.

김천에서 구미나 성주, 대구 방향의 국도에 있는 부상고개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대부분의 식당들은 70년대 기존 서민층의 연탄불 때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은 가옥들을 개조하여 문을 도로 쪽으로 내어 상가로 개조한 조그만 식당들인 반면 빛고운 어탕 칼국수 집은 비교적 현대식인 2층 건물이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지난봄에 처음 가본 이후 가끔 속이 허할 때 찾게 되었다.

이 집의 매력은 사장님 부부의 부지런함과 한눈에 보아도 서로 손발이 눈치껏 척척 맞고 친절하며 정직함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님이 장을 봐온 식재료를 차에서 내려 쌓아놓고 틈틈이 다듬으며 손님을 받고 서빙을 담당하는 반면 안주인은 주방을 도맡고 있었다.

어탕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눈은 항상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건물 귀퉁이 작은 텃밭으로 향한다.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장독대가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가끔은 거기서 나오는 고추, 깻잎들을 식재료로 쓰기도 하는 것 같았다.

소화 기능이 약한 내가 탈 나지 않고 믿고 먹는 몇 안 되는 식당 중에 하나이다. 음식도 정갈하지만 반찬에서 엄마의 손맛이 느껴진다.

어제도 생각나 굳이 부상고개로 가게 되었다. 실은 나는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은 내가 먼저 가자고 할 때가 더 많다. 어탕 칼국수를 주문하면 나오기 전에 밑반찬과 밥을 두 숟갈 정도 담아 주며 풋고추를 저며 만든 고추 장물과 미역줄기볶음을 넣어 비벼 먹으라고 내놓는다. 다 먹을 즈음이면 따끈한 어탕 칼국수가 나온다. 비린 맛이 전혀 없다. 호박, 감자, 양파와 그때그때 나오는 채소를 조금 넣은 칼국수는 부담스럽지 않다. 굳이 '어탕'느낌이 크게 나지 않고 어려서 엄마가 끓여주던 콩나물죽 같은 그런 칼칼한 맛이다.

어제는 특히나 밑반찬으로 감자볶음이 나왔다. 푹 익혔으나 물러짐이 전혀 없는 감자볶음이었다. 이런 감자의 맛은 끝없이 과거 기억으로 추억여행을 하게 해준다.

절대적으로 쌀도 돈도 궁핍했던 유년기 시절, 엄마는 밥 대신 삶은 감자를 사서 나눠주셨다. 그 시절 감자는 우리 가족의 삶에서 절대적이라 할 만큼 요긴한 구황 식재료였던 셈이다. 조금 형편이 나아졌는지 대구로 옮겨온 다가구 셋방 집 허술한 부엌에서 엄마는 늘 감자채를 볶으셨다. 연탄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감자채가 팬에 눌어붙지 않을 만큼만 콩기름을 아주 조금 붓고 볶던 모습은 눈에 선하다.

모든 추억이 사라져 기억으로 저장되었지만 그 기억을 꺼내 감상할 만큼 삶은 여유롭지도 한가롭지도 않아 까마득히 흐르는 세월 속에 잊고 살다가 어떤 음식에서, 그 냄새 또는 식감에서 어려서 경험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소환되는 걸 보면 감각이란 능력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자채볶음과 어탕 칼국수 속에 들어있는 감자채 몇 조각에서 전생 같은 아득한 수십 년 전 삶의 모습들을 기억하게 된다. 감각이 기억하는 그 맛을 아직도 나는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즐겨 찾고 있었나 보다.

부상고개는 어린 시절에 늘 보아 왔던 생활환경이 아직 남아 있어서인지 낯설지 않다. 다녀본 고만고만한 식당들의 내부와 마당 풍경은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조금 불편하고 쾌적하지 않은 데도 자주 찾게 되고 음식을 먹는 동안 오롯이 맛을 음미하며 맛에서 오는 향수에 젖어 들게 한다. 특히 빛고운 집의 풍경은 내가 학창 시절 내내 보았던 80년대 집들과 흡사하고 꽃밭에 심어놓은 꽃들이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주어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상고개가 어떤 역사적 운명을 지니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얼핏 보면 뼈대 있는 양반들이 살던 양반고을은 아니었을 것 같다. 오히려 민초들이 세금이나 부역을 피해 모여 살던 외곽지 아니었을까 싶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은 전투지였고 근대들어 길이 뚫리면서 차량 통행이 늘어 차들이 고개까지 올라왔다가 잠시 쉬며 허기진 배를 채웠을 것 같은 그런 위치에 있다. 한편, 부상역이라는 역참이 있었고 지금은 폐선(廢線)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엔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경부선 철도가 있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것 같다. 부상고개 국도변 식당들이 줄을 서 있는 뒤로 보이는 건 밭과 야산들이다. ‘부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뽕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양잠을 하였고 여기서 생산된 명주실로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 줄을 매었다고도 한다. 흥미로운 건 부상마을 주민들만 알고 있는 비밀 터널이 있는데 그곳엔 미지의 인공 원시림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부상고개를 지나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흥미로운 곳은 답사를 하기도 하면서 지내왔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으나 숨은 듯 가까운 곳에 미륵암도 찾아가 보았었다. 조만간 우리는 그 터널을 찾아가 볼 것이다. 부상고개는 이런저런 추억을 소환하게 하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게 하는 한적한 시골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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