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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턱시도의 가출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02일
ⓒ 김천신문
턱시도가 보이질 않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어디 놀러 나갔겠지.’라고 생각했다. 이튿날도 보이질 않았다. 농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턱시도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곧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 턱시도가 보이질 않았다. 큰 소리로 불러보고 약속된 세 번의 경적을 울렸지만, 턱시도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턱시도가 가출했나?’라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턱시도에게 정이 들었나 보다.

‘턱시도’는 화양연화 농장의 고양이 이름이다. 농장에 농막을 설치할 때부터 온통 검은색인 들고양이 한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주말에 집에 들른 딸아이가 고양이를 보더니 집을 만들어 주라고 성화를 부렸다. 어려서부터 개나 고양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고양이가 있으면 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변의 말을 들으니 귀가 솔깃했다. 농막 앞에 비 가림을 할 수 있는 나무상자로 고양이 집을 지었다. 딸아이가 고양이 전용 먹이 그릇과 사료도 샀다. 딸아이가 고양이는 상자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고양이 집 안에 종이 상자도 넣었다. 고양이 이름은 고양이의 울음을 그대로 따와서 ‘야옹’이라고 불렀다.

야옹이는 어려서부터 사람 손을 타지 않았는지 가까이는 오질 않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체 주변을 맴돌았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먹이도 넉넉하게 주었다. 겨울에는 춥지 않도록 하우스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다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한 마리는 야옹이와 같은 검은색이고 한 마리는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목과 배의 아랫부분이 흰색이었다. 딸은 유난히 턱시도를 좋아했다. 농장에 가면 먹이를 주고 고양이 사진, 특히 턱시도를 찍어서 가족톡에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새끼 두 마리는 농장 이름을 따서 각각 ‘화양’과 ‘연화’로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연화를 턱시도라고 부르면서 모두가 턱시도라고 불렀다. 야옹이와 턱시도는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 복숭아밭과 포도밭을 운동장 삼아서 건강하게 자랐다. 용변을 볼 때면 주변을 살피면서 발로 흙을 파고 용변을 보고 다시 발을 이용해서 흙을 덮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화양이와 턱시도는 야옹이의 젖부터 먹다가 젖과 사료를 함께 먹다가 젖을 떼고 사료만 먹었다. 젖을 떼고부터는 화양이가 턱시도보다 힘인 센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화양이가 보이질 않았다. 야옹이와 턱시도가 있어서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야옹이와 턱시도는 화양연화 농장을 놀이터 삼고 인근의 밭이나 수로 등으로 나들이하러 다녔다. 농장 가까이 가면서 차의 경적을 세 번 울리면 바로 먹이 그릇 앞에 나와서 자리를 잡았다. 세 번의 경적은 먹이를 주겠다는 조건반사적인 신호였다. 멀리 나들이하러 갔다가도 화양연화 농장에 들어설 때 경적을 세 번 울리면 농로와 수로를 번갈아 이용하면서 달리고 달려서 농막 앞의 먹이 그릇 앞으로 왔다. 어느 때는 그 달려오는 모습이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달리는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는 ‘저희들 왔습니다. 먹이 주세요.’라는 듯이 공손한 자세로 앉았다.

어느 날은 포도밭에서 야간작업하다가 기척을 느껴서 주변을 살펴보니 야옹이와 턱시도가 내 주변을 분주히 오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알고 먹이 그릇에 사료를 채우고 물그릇에는 지하수를 채우고 다시 작업하기도 했다. 하루는 농막 앞에 죽은 두더지를 물어다 놓기도 했다. 초가을에는 포도밭의 비 가림 하우스 안에 고양이가 물어다 놓은 죽은 뱀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화양연화 농장의 쥐, 두더지, 뱀을 열 마리 이상 잡았다. 먹이를 주고 보살펴주는 은혜 갚는 야옹이와 턱시도라고 주변에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야옹이가 다시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새끼를 낳은 야옹이와 턱시도가 사료 그릇 앞에서 자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앞발로 상대를 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잠시 소동이 있고 난 뒤에는 턱시도가 보이질 않는 일이 잦아졌다. 야옹이는 야옹이대로 새로 낳은 세 마리의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자면 많은 먹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턱시도는 젖을 뗐으니 사료로 배를 채워야 했으리라. 먹이를 두 군데 주어도 그런 일이 계속 생겼다.

턱시도가 가출하고 한 달쯤 지나고 고향 집에서 차를 몰고 화양연화 농장으로 오는 농로에서 턱시도를 만났다. 경적을 세 번 울리니 차를 향해 달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차에서 내리니 두어 걸음 앞까지 왔다. 차를 타고 계속 세 번씩 경적을 울리면서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에 차를 세우니 턱시도가 저만치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턱시도의 가출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사료를 가지러 농막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많은 사료를 담아서 예전의 그 자리에 담고는 주변을 살펴도 턱시도는 보이질 않았다. 대신에 야옹이와 새로 낳은 새끼 세 마리가 재빨리 먹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화양연화 농장에 턱시도는 보이질 않는다. 처음에는 턱시도가 가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턱시도가 출가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턱시도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같이 태어난 화양이가 어느 날 곁을 떠나고 야옹이와 둘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야옹이가 동생을 세 마리나 낳았으니,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점점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인 야옹이의 사랑을 받고 재롱을 떨기에는 너무 커버린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야옹이의 품과 화양연화 농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은 것이리라.

턱시도를 보면서 세 살 터울인 아들과 딸을 생각한다. 서른이 넘어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지인들의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우리 자식들은 언제라는 물음을 되뇌곤 했었다. 아내와 지인들은 현역에 있을 때 출가를 시켜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동생인 딸아이가 먼저 출가하고, 오빠인 아들은 올해 삼월에 출가했다.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서 출가하는 게 당연하고 기쁜 일임이 틀림없다. 턱시도의 가출을 출가로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아들과 며느리가 온다고 한다. 며느리 친구들 세 명도 함께 온다고 한다. 아내는 보름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했다. 과감하게 버리느라고 대형 종량제 봉투 몇 개가 필요했다. 침구류는 새로 구입을 하기도 하고 있던 것은 전부 빨았다. 일요일에는 농막도 대청소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 친구들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2박을 하고, 아내와 나는 농막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일손도 돕는다고 한다. 그래서 2026년 7월 4일 토요일에는 화양연화 농장에서 대극천 복숭아를 따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과로로 입안에 물집이 생기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화양연화 농장에 반가운 손님이 오는 이번 주말에 출가한 턱시도가 잠깐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이면 금상첨화이자 화양연화, 오늘도 참 좋은 날일 텐데 …….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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