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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 불편했던 귀성길이 추억이 된 이유몇십 년 전 추석을 앞둔 새벽, 서울역 앞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데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긴 줄이 역 광장을 따라 이어졌다. 손에는 작은 가방과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나 역시 그 줄 속에 있었다. 고향 김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표를 구하려 했지만 명절 기차표는 늘 부족했다. 어렵게 기다렸지만 표를 구하지 못한 날에는 역 주변에서 급하게 마련된 관광버스라도 올라타야 했다.
버스 안은 빈자리 하나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으로 가득했다. 평소라면 2~3시간이면 닿을 길을 몇 배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좁은 좌석에 몸을 기대고, 막히는 도로 위에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차를 구입한 뒤 가족과 함께 고향길에 올랐을 때도 명절 귀성길의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속도로에는 같은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는 차량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고 어른들은 휴게소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견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불편함이 오히려 가장 선명한 추석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 편안한 환경에서 명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께 기다리고, 함께 이동하고, 함께 고생했기에 그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가족의 기억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토록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고향이라는 장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석의 의미는 결국 얼마나 빨리, 얼마나 편하게 이동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었는지에 있었다.
■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어린 시절 김천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부모님이 계셨고, 가족이 모였으며, 익숙한 풍경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의 의미도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제는 추석에 갈 고향이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더 이상 찾아갈 사람이 없다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 말은 추석이라는 명절보다 먼저, 고향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그리워했던 것은 오래된 집이나 마을 풍경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주던 사람이었다.
고향은 건물이 아니다. 오래된 주소도 아니다.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고향이 된다.
■ 추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있다오늘날 추석의 풍경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예전처럼 모든 가족이 고향으로 모이는 모습은 줄어들고,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여행과 휴식을 선택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명절을 보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족의 해체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가족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가족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같은 장소에 모이는 것이 가족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도 가족을 지키는 중요한 방식이 되고 있다.
세대마다 명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부모 세대에게 명절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라기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기회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차이를 갈등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방식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이다.
■ 오래 이어지는 전통은 삶과 함께해야 한다추석의 모습이 달라지는 지금,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이다.
차례상은 조상을 기억하고 가족의 뿌리를 돌아보는 소중한 문화다. 그러나 상차림의 크기와 음식의 종류가 가족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부담과 의무만 남는 방식이라면, 그 전통이 지닌 따뜻한 의미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이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삶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 함께하는 기쁨보다 부담이 더 커진다면, 형식보다 먼저 그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의 추석 역시 형식과 의무만으로 채워진 날은 아니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먹고, 이야기하고, 쉬며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 추석은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한다그렇다면 앞으로의 추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첫 번째는 명절 준비의 부담을 나누는 일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먼 길을 찾아오는 사람, 가족을 돌보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구성원의 희생 위에서만 유지되는 명절이라면 그 방식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대화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관심에서 나온 질문이라도 상대에게는 부담과 평가로 느껴질 수 있다. 취업, 결혼, 출산 같은 삶의 선택은 각자의 시간과 상황이 다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답을 요구하기보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만남의 형식을 유연하게 여는 일이다.
모든 가족이 같은 방식으로 추석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나눌 수도 있다. 멀리 떨어진 가족은 전화와 영상통화로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같은 모습으로 모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이어지는가이다.
추석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가족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있다.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추석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다시 묻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상차림의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를, 만남의 형식보다 관계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오랜 시간 돌아가는 길도 기꺼이 견디게 했던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앞으로의 추석도 서로에게 돌아갈 이유가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