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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지난 10월 8일, 충남 천안에서 포도농사를 짓던 농민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농민단체에 따르면 그는 40대 청년농업인으로, 정부의 청년창업농 지원정책을 통해 농사를 시작했으며, 포도 가격 하락과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사망 경위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 비보 앞에서 농민들이 처한 경영 위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김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부 농가의 포도밭에는 수확을 포기한 포도송이들이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 포도가 열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따서 팔아봐야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농소면에서 샤인머스캣 농사를 짓는 큰누님과 봉산면에서 같은 농사를 짓는 큰형님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포도값은 크게 떨어졌고, 비싸게 마련한 포도밭의 가치마저 급락했다.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농지를 팔아도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재배 확대에 따른 공급 과잉을 얼마나 예측했고,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수확마저 포기하는 현실에 어떻게 대비했는가.
■ 재배 확대가 불러온 공급 과잉의 위기
한때 샤인머스캣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유망 작물이었다. 농민들은 더 나은 소득을 기대하며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갖추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정부도 고부가가치 농업과 시설 현대화를 강조하며 관련 투자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높은 수익을 기대한 농가들이 앞다퉈 재배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급격히 늘었다. 개별 농민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시장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품질 저하와 소비 부진까지 겹쳤다.
가락시장 샤인머스캣 상품(上品) 2㎏ 평균 도매가격은 2020년 8~10월 2만8,532원에서 2026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8,746원으로 약 69% 하락했다. 인건비와 농자재비 부담까지 겹쳤다.
가격 폭락의 책임을 정부에만 돌릴 수는 없다. 작목 선택은 농민의 판단이고, 시장가격은 수급에 따라 움직이며, 품질관리 역시 농민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가 투자를 지원했다면 공급 확대에 따른 위험을 농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가격 하락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대책이 실제 농민의 경영 위험을 얼마나 줄여주었느냐이다.
■ 지원 실적에 가려진 농가의 경영 위기
과수농업은 한 번 투자하면 쉽게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시설을 설치하고 포도나무를 심는 데 적지 않은 자금이 들고, 다른 품종으로 전환하려면 다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포도값과 포도밭 가격이 함께 떨어지면 당장의 소득만이 아니라 평생 일군 자산의 가치까지 흔들린다. 대출로 농지를 마련하거나 시설에 투자한 농가에는 이중의 부담이다.
농민의 경영 위기는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천처럼 농업이 지역경제의 중요한 축인 도농복합도시에서는 농가 소득 감소가 농자재 구매 감소와 고용 축소, 지역 상권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통구조도 돌아봐야 한다. 농민은 생산비를 먼저 투자하지만 수확 후 받는 가격은 알기 어렵고, 공급이 몰리면 출하 시기와 판로를 조절하기 어려운 농가가 더 큰 부담을 안는다. 산지와 소비자 가격의 차이에는 필요한 유통비용도 있지만,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비용은 줄여야 한다. 산지유통시설 현대화와 온라인 도매시장 확대의 성과는 시설 숫자가 아니라 유통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농민의 수취가격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농업정책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시설을 설치하고 자금을 지원했는지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지원받은 농민이 몇 년 뒤에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대출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다. 정부가 모든 시장 손실을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정책이 투자와 생산 확대를 뒷받침했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 위험을 관리할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어야 올바른 정책이다
미국은 농장 전체의 수입 감소를 보장하는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유럽연합은 생산자 조직을 중심으로 시장위기 대응을 지원한다. 우리나라에도 포도를 대상으로 하는 농업수입안정보험이 있다. 그러나 2025년 포도 품목의 보험 가입률은 2.4%에 그쳤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 작동 결과다. 가격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나타난 현실에서, 정작 위기에 처한 농민들은 얼마나 보호받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네 가지다.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농가에 대한 정책자금 상환유예와 채무조정, 공급 과잉 위험을 조기에 알리는 시장정보 체계, 농업정책 성과평가 기준의 전환,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이 농가의 경영실태를 함께 살피고 공동선별·공동출하와 판로 다변화를 통해 유통비용을 줄이고 농가 수취가격을 높이는 일이다. 지원금 집행률과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농가의 순소득이 개선됐는지, 다음 해에도 영농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
김천의 포도밭에는 아직 수확하지 못한 포도송이들이 매달려 있다. 단순히 팔리지 않은 농산물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쏟은 농민의 땀과 투자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증거다.
농업정책의 성적표는 얼마나 많이 심었느냐가 아니라, 농민이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