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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면편(33)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5년 11월 23일

▶ 양지마, 음지마가 이웃한 봉명(태화1리)


덕천 2리로 속하는 도산, 남전마을을 지나 국도 4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국도와 태화천을 사이로 두고 왼편에 양지마, 오른편에 음지마로 나뉘어 이웃하고 있는 봉명마을, 태화 1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은 한말(韓末)까지 충북 황간군 황간면에 속한 충청도 땅이었는데 1914년 경북 김천군 봉산면 태화동으로 개칭되어 이때부터 경상도 김천 관할이 되었다.


이 마을의 원래 지명은 가막사(可幕寺)또는 감막사(柑幕寺)로 불리는 절이 있었음으로 해서 가막리, 가매기 등으로 불렸는데 100여 년 전 이러한 지명이 동명으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여론이 일어 길조(吉鳥)인 봉황새 봉(鳳)자를 따서 봉명(鳳鳴)으로 했다고 한다.


또 양지, 음지마로 나뉘어 불리는 사연과 관련해서 주민 박태기(71세)씨에 따르면 아침에 해가 뜨면 양지마쪽을 먼저 비추어 양지마(양지뜸)이라 했고 나중에 해가 비치는 맞은편을 음지마(음지뜸)라 했다고 전한다.


이 마을이 처음 형성된 것은 1710년 양지마에 충주박씨가 이거하면서 부터로 이후 영천최씨와 해풍김씨가 차례로 입향해 세 문중이 의좋게 살았는데 현재는 충주박씨만이 집성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음지마에는 마을회관 옆 밭 중앙에 옛 가막사의 석탑 한 기가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위태롭게 서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음지마을회관 옆에 있는 가막사지 석탑


 


노인회장 박우정(74세)씨에 따르면 일제시대 때 탑이 도굴되어 크게 파손되었었는데 뒤에 동민들이 현재와 같이 임시방편으로 쌓아 놓은 것 이라고 한다.


가막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전해져오는 자료가 없어 고증할 길이 없는데 가막사와 국도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양지마을 뒤 대골(大谷)골짜기에 1940년대까지 가막사에 딸린 암자가 있었고 그 자리에 지금도 남아있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9호 석조보살입상이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가막사가 적어도 고려전기이전에 창건된 상당한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땅속 깊이 박혀있던 불상을 바로세우고 보호각을 지어 비바람을 피하게 했는데 예전부터 불상의 영험함을 믿고 지켜오던 주민들이 가장 기뻐하고 있었다.


 



△양지마을 뒤의 석조보살 입상


 


덧붙여 감막사지의 유일한 유물로 남아있는 석탑도 하루빨리 복원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필자에게 거듭 전하는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태화천변의 마을 풍광만큼이나  더없이 아름답다.


 


 


▶ 태평사의 전설이 전하는 태평(태화 2리)


태화 1리 양지마와 이웃하고 있는 태평마을 태화 2리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가 세조의 탄압을 피해 피난을 가던중 이 마을에 하룻밤 묵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를 영광스럽게 여긴 마을에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동명을 태평(太平)이라 했다고 마을주민 허태용(80세)씨가 전한다.


태평마을 뒤로 철길을 넘어서면 재궁골이라는 큰 골짜기가 있는데 영일정씨 봉계 입향조인 정이교(鄭以僑)선생과 후손 50여위를 모신 선산과 태평재라는 재실이 있는 유서 깊은 골이다.
이 일대에 영일정씨 문중의 선산과 재실이 들어서기까지의 내력이 담긴 유명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에는 원래 태평사라는 절이 있던 명당으로 소문난 자리였는데 옛날 봉계의 대표적인 명문가였던 영일정씨 집안과 본관이 알려지지 않은 황씨 집안이 서로 재궁골 일대의 명당을 얻기 위해 경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 황씨 집안의 황울산(黃蔚山)이라는 사람이 절터를 차지할 요량으로 “동지달 그믐밤에 절 지붕에서 송아지가 울면 절이 망한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법당 지붕에 몰래 송아지를 올려놓았는데 이후 차츰 스님들이 떠나고 절은 망해서 황씨 집안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


이후 두 집안에서 거의 동시에 초상이 났는데 영일정씨 문중에서 묘책을 세워 재궁골에 산소를 먼저 모시게 되니 황울산이 “이 터는 내 것이 못되는 구나” 탄식하며 떠난 후 영일정씨 문중소유가 되고 절이 헐린 자리에 태평재실이 세워졌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이다.


 



△영일정씨 문중 태평재실이 있는 재궁골 전경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5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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