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리 들말, 들미기, 원당
감문면 하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평촌(坪村)은 중왕평야와 앞들, 구시내들로 이루어진 넓은 들판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들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들마을, 들말이라고 불린다.
들말은 1708년 수원백씨 봉래(鳳來)공이 김산 구읍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래 1805년 평산신씨 영희(永熙)공이 약목에서 이거해왔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수원백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마을 동쪽편 대나무숲 아래 감문 구야마을이 보이는 지점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옛날 도적떼가 자주 출몰하자 100여년전에 지금이 자리로 옮겨왔다고 마을이장 백재목(59세)씨가 전한다.
이 마을 앞들 어모천 옆에는 옥배미라 불리는 유명한 웅덩이가 있는데 이곳에 옛날 어모현에서 죄인을 가두어두던 옥(獄)이 있었던 장소라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작은 웅덩이와 옥배미라는 이름으로만 옛 흔적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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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어모현의 죄인들을 수감하는 옥(獄)이 있던 장소로 알려진 옥배미
군자3리 덕림(德林)마을은 덕마1리 상덕마을과 군자1리 하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절강편씨 일가가 마을을 개척하고 처음에 살았었다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는 1724년에 경주이씨 명철(明哲)이란 분이 들어오고 뒤에 하덕에서 밀양박씨가 이거하고 또 김해김씨가 차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덕림이라고 하는 마을이름은 과거에 덕룡이라고 불린 상덕과 하덕 마을아래에 숲이 울창하다하여 덕림(德林)이라 했다고 마을주민 박시하(70세)씨가 전한다.
도로변에 있으면서 군자3리로 속하는 원당(院塘)마을은 1946년에 덕림마을에 살던 희대(喜大)라는 분이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원당이라고 하는 지명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종합해 볼때 과거 어모현의 원(院)이 이 마을 인근에 있었고 또 마을 위에 원당(圓塘)이라는 저수지가 있었다는 점을 통해 볼 때 이 두 가지 지명을 합해 원당(院塘)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덕마리 상덕, 못안, 갈마
덕마리는 상덕, 못안, 갈마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었는데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합하여 어모현으로 고칠 때 상덕의 옛 이름인 덕룡(德龍)과 갈마(渴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덕마(德馬)동으로 한다.
군자3리인 덕림을 지나 골 가장 안쪽에 자리한 상덕마을은 인근의 못안과 함께 덕마1리로 속한다.
상덕마을의 형성은 옛날에 수원백씨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전해오는데 1482년 서산정씨(입향조:世鱗)가 봉계에서 이거해오고 1639년 동래정씨(景龍), 1735년 전주이씨(言)가 상주 화서에서, 1784년 수원백씨(同郁)가 상주 공성에서 이거했다고 전해진다.
상덕이라고 하는 마을의 지명은 풍수지리설로 볼 때 마을 뒷산 순박골이 용의 형상이라 아랫마을인 하덕과 함께 덕룡(德龍)이라했는데 뒤에 이 마을이 위에 있다 하여 상덕(上德)이라 했다고 마을 이장 박주범(72세)씨가 전한다.
상덕 아래에는 연화지라 불리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 안쪽에 작은 부락이 있어 못의 안쪽에 있다하여 못안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상덕마을에서 갈말재를 넘으면 덕마2리로 속하는 평산신씨 집성촌 갈마부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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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마마을 입구의 조산. 매년 동제를 올리는 장소이다.
이 마을은 마을 주변의 산세가 말이 물을 먹으려고 앞발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 형상이라 하여 목이마른 말에 비유하여 갈마(渴馬)동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서 지금은 갈말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일설에는 김천에서 상주방면으로 가는 옛길이 갈마마을앞으로 있었는데 말을 타고 가던 나그네들이 어모천 옆 솔머리의 솔밭에서 쉬면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해서 말에서 내려 물울 먹고가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갈마(渴馬)라 했다고도 한다.
<글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