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말잘하기
이 우 상 (수필가 · 집필위원)
중국 송나라에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랴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내므로 다시 말하기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랴 했더니 모두 좋아했다고 한데서 유래 된 말을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간사한 말주변으로 속이거나 농락함을 이르는 말이다. 일명 ‘모사꾼’으로 통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원균이 왜선 11척을 파괴했다고 조정에 보고했다. 조정에서 물었다. 11척 파괴한 게 분명 맞느냐? 원균 왈 “1척이면 어떻고 11척이면 또 어떻겠는가? 지금 파괴하면 어떻고 또 1년 후에 파괴하면 어떻겠는가? ........내게는 군함이 있잖소?” 다시 묻기를 “당신한테 군함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네가 정말로 왜선 11척을 물리칠 능력이 있느냐고 묻는 거다.” 원균 왈 “숫자는 중요하지 않소.
군함이 나한테 있소!” 결국 원균의 숫자놀음에 속아 이 순신에게 갈 군력까지 원균에게 몰아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세치 밖에 안 되는 혀로 만들어지는 말, 때로는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말 한 마디가 태산을 옮기기도 하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한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어마어마한 말의 존재, 어쩌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중 하나인데........그러나 말 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리 속담에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나고 말은 해야 정이 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옳게 전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전달되어 상대방의 오해를 사는가 하면 일부러 상대방을 구렁텅이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고 살기는 더 힘들다. 말하지 않고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때문에 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말로써 천 냥 빚을 갚고 때로는 출세까지 할 수 있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말 한 마디 잘 못하여 남을 죽음의 나락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자신이 궁지에 몰리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송곳으로 남의 가슴을 찌르면 곧 비수가 되어 돌아와 목을 자르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칼보다 무서운 것이 말이라고들 한다.
칼에는 양날 밖에 없지만 입에는 수십 개의 날이 있다. 언젠가 “좋은 학교를 나오신 분이......”라고 점잖게 뼈 있는 한 마디 말을 한 것이 상대방을 한강에 투신케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세치도 안 되는 혀 놀림, 경우에 따라서는 잘 해야 본전이고 손해 보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임에서 말실수를 하여 집에 돌아와 후회를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은 드물다. 너무 많이 해도 진실성, 신빙성이 없어 보이고 너무 안 하면 모자라는 사람 취급을 받게 만드는 것이 말이다. 모자라도 안 되고 넘치면 오히려 모자람보다 못하게 되기(過猶不及)도 하는 이 말하기는 알맞게 조절하기가 정말 어렵다.
공자의 논어에 보면 “말만 영리하게 잘 하는 자는 인자한 마음이 없고(巧言令色鮮矣仁), 강직ㆍ의연ㆍ소박하고 말을 더듬듯 조심하는 삶이 인에 가깝다(剛毅木訥近毅仁)”라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하여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침묵보다 못 하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잘 하는 일인가 싶다. 말을 술술 잘하면 비단 장사 같다고도 하고 거짓이 담긴 말을 하면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을 하라고도 한다. 언어는 습관이다. 옳은 말 곧은 말을 하는 사람은 많이 배우고 알아서가 아니라 평소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혀를 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
짧고 작은 말 한 마디라라도 정성을 다하여, 이왕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는 말에 걸맞게 남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이왕이면 상대방이 기분좋아할 말을 찾아서 하는 것이 말 잘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