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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날은 가고 이제는 웃음의 날이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6월 22일

                                        눈물의 날은 가고 이제는 웃음의 날이


 


                                                                           김 옥 분(감문새마을부녀회장)


 



  저는 감문면 금라리에서 출생해 1982년 남편을 만나 송북리로 시집을 와서 1남1녀 자녀를 둔 주부입니다. 남편이 2남4녀 중 막내였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신혼 때부터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세 살 무렵 송북리 동네 부녀회의를 한다고 이웃아주머니가 참석하라는 말에 그 인연으로  부녀회에 몸담아 마을부녀회장으로 일하면서 면 부녀회 총무까지 하는 동안 부녀회의 회비관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군민체육대회 시 기금마련을 위해 어린애를 업고 제가 직접  만든 묵과 찌짐, 음료 등을 판매해 그 당시 430만원의 기금을 모아 튼튼한 부녀회 자립기반 조성을 했습니다.            


 


  이렇게 제 성격에 맞는 부녀회 활동에 전념해 보람을 느끼고 우리 가정도  남부럽지 않게 남편도 청년회장을 맡아 저를 도와주며 시어른들께서도 부녀회 활동을 나가는 날이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일이라며 손수 집안일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은 마냥 행복한 시간만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마을회관이 버스종점인데 버스가 전기선을 끌고 그냥 가버리는 것을 목격한 남편이 그때가 여름방학이라 그냥 두면 아이들이 다친다는 생각에 전기선을 정리하고 치우다가 전기감전으로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런 사고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아픔을 감당해야했습니다. 모든 일을 다 접고 멍하니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시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손자를 생각해서라도 기운 차리고 일어나라. 니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산사람은 살아보자꾸나.”       


 


  정말로 딴생각을 하고 싶어도 어린자식과 부모님 때문에 모진 마음도 못 먹고 자식 먼저 떠나버린 시어른생각도 해보고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고 일어나 일을 했습니다.               


 


  슬퍼도 눈물을 꼭 참고 힘들어도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 따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 기죽지 않고 착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다짐으로 집에 오면 숙제와 준비물 등 다 챙겨주고 시어른과 같이 어른에 대한 예절, 친구들과의 의리 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남편만 곁에 없을 뿐이지 단란한 가정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시더니 일어나시지 못해 1년7개월 동안 대소변은 물론이고 음식도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해드리고 목욕을 해드리는 등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저 나름대로는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명은 거역할 수 없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버님마저 어머님과 똑같은 증세로 앓아누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로서 그래도 이해하고 다해왔지만 아버님은 체구가 큰데다 여자인 제가 온갖 수발을 하려니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친정아버지를 모시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이젠 시아버지를 제  남편이라 생각하고 의지하며 살았는데 또 그렇게 1여년 뒤에  돌아가시고 나니 진짜 혼자뿐이라 생각했지만 한 번의 아픔이 도움이 되었는지 무조건 애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벼농사며 참외농사며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무조건 다해 보자고 이를 악물고 일을 하니 이때부터는 겁부터 나는 제 성격이 바뀌어졌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사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셨나 봅니다. 아들의 중학교 입학 무렵, 쓸 것을 아껴 일 년에 500만원씩 무조건 저축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자도  높고 해서 돈만 생기면 금융기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일천만원이 이천만원이 되고 하니까 농협중앙회에서 저축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덕분인지 면 부녀회장을 맡게 됐고   불우이웃돕기사업을 먼저 하게 됐습니다.2002년 휴경지를 개간해 고구마를 심어 수확을 거둬 기금을 마련하고 독거노인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에서 자부담을 해서 가스렌지, 소형냉장고 등을 구입, 전달하고 도로변 제초작업으로 사업비를 마련해 명절이면 떡을 해서 소년소녀가장,   장애인가구 등에 나눠주고 겨울에는 독거노인가정에 보일러기름을 넣어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을부녀회장들과 손발이 맞아 가을이면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담구어 전달하고 연말이면 부녀회명의로 불우이웃돕기성금을 선뜻 내놓을 수 있어 봉사하는 일에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우리 아이들도 다 커서 딸은 직장생활을 하고 아들은 군생활로 안정적인 가정이 됐습니다.제가 대농으로 인해 그만큼 바쁘지만 또 그만큼 예전에 살 때보다는 여유가 생겨 뭔가 남는 봉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2003년도부터 매년 불우한 초등학생 2명에게 20만원씩의 장학금을 주고 명절이나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하는 등 커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자그마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 어려운 일에 내가 겪어봐야 알게 되듯이 어려울 때를 생각해서 이런 일을 하니 봉사하는 회장님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진정한 봉사가 뭔지 마음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사실을 봉사하면서 자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안되는 게 없습니다.


 


  새마을 부녀회장님 여러분, 저는 새마을로 인해 어려운 가정생활을 극복했으며 봉사로 인해 배웠던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속이 알찬 새마을봉사 끓임 없이 하여 우리 부녀회원이 주축이 되는 선진 봉사를 해나가야겠습니다.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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