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자원 봉사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인터뷰를 위해 약속장소인 감천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종합사회복지관 김정자(69세) 여성자원봉사협의회장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방에 든 휴대폰에서는 쉬지 않고 벨이 울렸고 김 회장은 통화를 하느라 양해를 구하기 바빴다. 병간호, 미용봉사 등 14개 자원봉사단체의 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니 통화할 일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다행히 김 회장이 스스로 휴대폰의 전원을 내려 인터뷰에는 별무리가 없었다.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35살 이었어요. 새마을운동이 자원봉사로 이어졌는데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봉사활동을 위해 자주 집을 비우자 동내 사람들이 바람이 났다고 오해한 겁니다. 어찌나 서운하던지 눈물이 나더군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사람들도 자원봉사를 이해하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주고 있어요.”
김 회장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태풍 루사가 지나간 후의 김천이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례 5개면 중 저는 지례로 자원봉사를 나갔습니다. 지례면사무소에서 15일간 밥을 해주었어요. 다른 봉사자들은 교대로 봉사를 했지만 저는 회장을 맡고 있어 단 하루도 쉴수가 없었지요. 결국 다리가 부어올라 너무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어요. 마침 경희한의원에서 자원봉사 나온 의료봉사팀으로부터 침을 맞은 후 씻은 듯이 나았어요. 아무래도 봉사활동을 많이 해 복 받은 것 같아요.”
쑥스럽게 웃는 김 회장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봉사활동을 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깁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은혜를 입으면 갚는 것이 자원봉사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태풍 루사 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 보답을 해야했지요. 안동, 무주, 김해, 풍기 등 많은 곳을 다니며 정말 열심히 자원봉사를 했어요. 점심도 우리가 직접 챙겼어요”
열심히 일하는 김 회장에게는 인복도 따른다. 14개 단체에 회원수가 250여명에 이르지만 김 회장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김 회장 역시 이런 회원들이 고맙기만 하다.
“회원들이 너무 열심히 협조를 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회장의 활발한 자원봉사에는 남편 장규섭씨와 자녀들의 도움도 크다.
“남편은 저의 자원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어요. 이런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지금같은 봉사활동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집 아들 딸들도 힘이 있을때까지 자원봉사를 하라며 힘을 실어주고 매달 용돈까지 보내 줍니다”
남편 장규섭씨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둔 김 회장의 마지막 바램은 소박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회장직을 그만 두려고 해요. 하지만 회원들의 부탁으로 이번 임기를 맡게 됐네요. 이번 임기가 끝나면 회장직을 그만 두고 한명의 자원봉사자로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있어 자원봉사는 아마도 생활의 전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