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산 윤애라(부곡동) 나무가 연둣빛 기와를 층층이 얹어놓은 듯 찬란한 지난해 여름, 희안한 꿈을 두 번이나 꾸었는데 아무래도 태몽 같다며 병원에 좀 같이 가자는 형님의 부탁을 받았다. 조심조심 꿈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 같아요’하는 얼굴이 첫 아이를 가졌을 때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형님은 나보다 아홉 살 아래인 고등학교 후배이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열세 살이나 많은 아주버님에게 시집 와서 불편한 맏며느리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게다가 나는 아들만 둘을 낳았고 형님은 딸만 둘을 두었던 터였다.
나이차이가 너무 많아 ‘동서’라는 호칭도 제대로 한 번 내게 부르지 못한 채 십 수 년을 불편하게 지내왔다. 한 번도 표현은 안 했지만, 나이 많은 동서가 아들까지 둘이나 두었으니 형님은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을까.
그런데 아들이라니, 아니 아들 같다는 그 말은 지금 아들을 낳은 것처럼이나 기쁘고 반가웠다. 아홉 살이나 어린 후배에게 형님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이 내가 속이 비었거나 속을 비워낸 거라고 친구들은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내가 아들만 둘을 가지고도 조심스럽고 불편했던 마음은 더 힘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앙금이 씻겨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낳아봐야 알겠지만 형님과 나는 아들이라 굳게 믿으며 부지런히 병원을 들락거렸다. 형님은 부른 배를 안고 그 힘든 식당 일을 즐겁고 씩씩하게 해내었다.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급하게 병원을 찾은 그 날은 한 겨울인데도 바람 없이 포근했다.
진통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형님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어서 저 부른 배가 가라앉으며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다. 믿음과 소망대로 아이는 건강한 남자 아이였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그동안의 고생과 앙금을 내 보낸 형님의 얼굴을 보니 뜨거운 눈물이 났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는 어머님 눈시울도 붉게 부풀어 있었다. 어린 아내로 딸만 둔 맏며느리로 그동안의 고생을 아들의 출산으로 형님인생 최대의 홈런을 날린 것이다. 낯가림이 심할 땐 데도 조카는 자기의 출생을 지켜본 걸 아는지 나만 보면 벙긋벙긋 웃는다. 내가 바라고 소망해서 열 달을 품어 낳은 내 아이처럼 규빈이는 사랑스럽고 고맙다.
지난 내생일 날, 형님은 배부른 몸으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내게 선물을 하면서 늘 고마워 한다는 뜨거운 마음을 주었다. 고르지 않은 서열을 편안하게 관리해 주시는 시부모님과 나이는 어리지만 맏이 노릇을 너무도 잘 감당하는 형님과 어린 형수와 동갑인 아내 사이를 적당하게 조절해 주는 남편에게 나도 늘 고맙다. *경북도여성백일장 산문부 차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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