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역사를 만드는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필자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철한 의미에서는 상황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과 확률이 높다고 하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기의 시대가 되면 국민들 사이에 이같은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새로운 지도자를 강력하게 요구 해 왔다.
이같은 사실은 싱가포르의 전 수상이었던 이광요가 하버드 대학에서 연설한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락한 소비사회를 구축한 서구 사회는 더 이상 탁월한 지도자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즈벨트, 샤를 드골과 같은 지도자는 위기의 시대를 평정한 강력한 지도자들이었다.
챔벌린이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던 처칠에게 자리를 내주었듯이, 나치 독일이 패하자 영국인들은 처칠보다 인간적인 애틀리를 선택함으로써, 전후의 평화를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프랑스 레지스탕트 운동의 상징이었던 드골은 1944년 개선장군으로 파리에 입성했지만, 정부를 재정비한 직후 은퇴를 선언 하였고 1958년 프랑스가 알제리전쟁으로 위기에 몰리자 국민들은 다시 한번 드골의 지도력을 원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안정을 회복하자, 즉시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드골은 물러나야 했다.
분단 독일은 훗날 통일의 과업을 이룩한 헬무드 콜에게 16년간 총리직을 맡겼으나, 통일 과업이 완수된 뒤에는 슈뢰더에게 표를 던졌고 결국 독일도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국민들도 지금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지도자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의 원리”에서 제시 하듯이 우리 또한 내외부로부터의 강력한 도전을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로부터는 사회 공공의 과제인 국민4대통합보험의 해결책, 교육부총리의 부재, 오락게임업체의 특혜 의혹 등으로 도전받고 있고, 외부로부터는 한미FTA문제, 일본총리의 신사참배, 전시 국방자주권 등으로 도전받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나갈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최고의 지도자는 현실과 이상이 혼돈하는 어려움에 매일, 매순간 부딪히게 된다.
거기에 더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의 마음 한 조각을 사로잡기 위해 갖은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또 그 주위에 둘러 쌓이게 되면 그야말로 “궁궐 속에 갖힌 임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정황에 대해 링컨도 “대통령이 되자 나의 입장은 백팔십도로 달라졌고 나는 이제 적들로 둘러쌓이게 되었다. 나를 위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들 말이다.”라고 탄식 하였던 것이다.
이런 위험한 정황을 버텨내는데는 한계가 최대 십 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권불십년( 權不十年)”인데 이말은 십 년이면 모든 권력이 부패하고 그 체제가 붕괴한다는 말이다.
하물며 세종대왕은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32년간이나 제위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의 국정결정을 내리면서도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국리민복을 증진하는데 전심전력을 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세계적인 문화유산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여진족을 물리치고 사군육진을 개척하면서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 하는등 집현전학사의 육성, 군사적 용장(勇將)의 등용, 과학과 음악의 천재들을 적극 발굴하면서 나라의 태평성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미국에 링컨이 있고, 중국에 당태종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세종대왕 이라는 영웅이 있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세종대왕과 같이 자신을 경책하면서 훌륭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국민들을 진정으로 섬길줄 아는 그런 영웅적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