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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 노경애(수필가·위량초등학교)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8월 24일

  서랍을 정리했다. 계절이 바뀌어도 입지 않은 옷가지들이 나프탈렌 냄새를 풍기며 좁은 공간 속에서 찡그리고 누워있다. 어릴 적 좁은 방에서 여럿 형제들이  한 이불 속에 끼어 자는 것처럼 삶의 한 단면을 보는 듯 애잔하다.


  살이 쪄서 몸에 맡지 않는 옷, 딸아이가 첫 월급을 받고 선물해준 옷이 있는가 하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빨간 캐시밀론 내의도 있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서랍이 비좁다.


  몇 년 동안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소중한 옷이 아니던가. 유행이 지난 옷이기도 하지만 서랍밑창이 빠질 지경에 놓여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강제퇴출을 시키는 것이다.


  서랍 구석진 곳에는 가제 손수건이 신주단지를 모셔 놓은 듯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겉이 누렇게 찌들은 낡은 가제손수건을 나는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요즘은 화려해진 옷만큼이나 손수건의 색감이 곱다. 가제손수건은 나염을 한 손수건에 밀려 아예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나는 손수건을 다시 세탁을 해서 넣어두려고 끄집어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제손수건은 늘 내 손에 쥐어있었다.


  천방지축 뛰어 노는 아이들의 꾀죄죄한 얼굴을 수시로 닦아주기도 하고, 침을 흘리는 아이의 목에 둘러주기도 했다. 천이 얇아 겹이 되게 맞붙인 올이 성근 가제손수건이지만 땀을 닦으면 흡수력이 뛰어났다. 그렇게 꼬질꼬질 때 묻은 손수건을 삶아서 말리면 목화솜처럼 금세 새하얗게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마음까지 맑아져왔다.


  젊은 시절, 나는 갓난아이를 업고 땀을 훔치며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 있었다. 커다란 느티나무아래 정자가 나오면 시가에 다 온 거나 진배없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매미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 우렁차게 울어댔다.


  어쩌면 매미가 지금 동구 밖에 며느리가 오고 있노라고 어머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님은 용케도 내가 오는 줄 알고 마중을 나오셨다.


  어머님의 예감은 늘 적중했다. 꿈을 꾸어도 동네 일어날 일들을 알아맞히셨다. 저 만치 골목에서 몸이 뒤로 젖힌 채 특유의 걸음걸이로 손을 내 밀며 걸어오고 계셨다.


  “아쿠, 우리 강생이 이 더븐 날 할미한테 오뉘라고 욕 봤데이” 하시며 포대기 끈을 풀기도 전에 덥석 아이를 빼 가셨다.


  “어머님, 별고 없으셨죠?”


  안부 인사를 하는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방긋방긋 웃는 손자에게 고운 눈길을 주며 기뻐하셨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갓난이를 안고 살림을 나왔으니 늘 눈에 밟힌 것은 당연했다.


  어머님은 대청마루에 아이를 눕혀놓고 가제손수건에 물을 적셔왔다. 종일 등에 업혀 땀을 흘린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시기 위해서였다.


  어머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아이가 간지러운지 연신 까르륵 웃으며 눈을 맞추었다. 이 녀석이 벌써 나를 알아본다고 하시는 말씀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이로 인해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사립문밖으로 새 나갔다. 어머님은 오늘은 사람 사는 것 같다며 허공에 시선을 두셨다.
 


  앞마당에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려앉았다. 언제 싸놓았는지 어머님은 대청마루에다 텃밭에 심어놓은, 푸성귀와 잡곡을 올망졸망 비닐봉지에 담아 내놓으셨다. 당신 곁에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할 법도 한데 남편의 조석이 걱정이 되었던지 후딱 챙겨 가라며 재촉을 하셨다. 


  산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어머님은 정자나무 아래서서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가라며 손수건을 흔들고 계셨다. 어머님의 체신이 점점 작아 질 때까지 연신 뒤를 돌아다보았다. 집에 돌아와서 비닐봉지를 펼쳤다.


  푸성귀 속에 가제손수건이 들어있었다. 손자의 얼굴을 닦아주시곤 정신이 없어서 손수건을 흘리셨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꼬깃꼬깃 접은 돈이 흘러나왔다.


  용돈을 드렸는데 마음만 받고 돈은 도로 가제손수건에다 돌돌 말아 넣으신 것이다.


  “집에 가믄 푸성귀가 들은 비닐 봉다리부터 퍼뜩 열어 놔라.”


  나는 어머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물이 물러질까 봐 그러시나보다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아 놓은 손수건이 아니던가. 구성뜨개실이 닳아서 풀어지기도 하고, 군데군데 낡아 실이 아늘아늘하게 보일 정도로 제 수명을 다 한 볼품없는 가제손수건이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코바늘로 수를 놓은 정성만큼이나 애절한 사랑이 녹아있는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손수건이다. 초저녁잠이 없으신 어머니는 손자 기저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손수건을 만드셨을 것이다.


  으스름 달밤에 적적함을 달래며 순간순간마다 자식들의 앞길을 비는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며 뜨개질을 하셨으리라. 그런 손수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도 고향집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바느질 통에 아이들 어렸을 적에 만들어 놓은 가제손수건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손자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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