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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아이답게 놀리지 못하는 이유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8월 31일

아이들을 아이답게 놀리지 못하는 이유


                                  


                                                              이성희(신음동 주공그린빌)


 


 


  알싸한 냉기마저 몰고 왔던 올해의 장마는 어김없이 농촌과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7월의 끝자락에 와서야 물러갔다.


  태풍을 동반한 비가 올쯤이면 직지천으로 유입된 황토물이 산책로를 넘어 길게 늘어선 방천을 부술 기세로 급히 흘러간다. 베란다 너머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이 광경은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와락 달려들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띵 똥’ 울리는 벨의 경쾌한 소리만큼이나 환한 아이의 얼굴이 들어온다.
아침부터 퍼붓는 비를 피해 학원차량으로 하원하란 엄마의 당부를 잊고 우산을 받쳐 든 아이는 또 집까지 종종 걸음을 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자마자 TV 전원을 눌러 애니메이션 채널에 고정시킨 뒤 쇼파에 푹 눌러 앉는다.
“오늘 배운 피아노 연습이나 해.”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듯 몰리는 아이의 어깨에 왠지 모를 측은함이 배어있다.
그런데 나는 모질게 빼앗아 든 리모컨을 바닥에 내려놓지 못하고 습관처럼 여기저기를  넘겨다본다. 순간, 아이 앞에서 절대 TV 화면에 눈길 주지 않으리란 아빠와 나의 맹세가 섬광처럼 스쳐갔다. 이 시대의 교육은 이미 아이만이 안고 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공존하면서 이루어 가야 할 하나의 과제요 목표인 셈이다.


  엄마의 몰인정에 불만을 나타내며 건반을 눌러대는 아이의 모습이 불안하다. 경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막연한 연주가 아이의 손가락을 통해 울려나온다.
“지금 그게 아니잖아. 4분 음표에서 8분음표로 넘어 갈 때 확실히 구분해서 쳐야지.”
“나중에 하면 안돼요?”
“이거 나 좋으라고 하니? 앞으로 어른 돼서 다 네 삶에 도움  되라고 하는 것이지.”
알아듣든 말든 수 십 번도 더 한 얘기를, 앞으로도 수 십 번도 더 써먹을 상투적인 얘기들을 펼쳐놓고 만다.


  처음과는 달리 이론이 적용된 피아노 수업이 아이에겐 마냥 어렵고 지루한 시간인 것만 같다. 그래서 얼마 전 피아노 교재를 모두 찾아 처음부터 이론을 복습시키던 터였다.
다행히 잘 따라오기는 하는데 음악가가 될 재목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아침에 책 안 읽었으니까 끝내고  나서  읽어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랬지.”
원망 섞인 아이의 얼굴이 돌아서는 내 등에 꽃인다.


  ‘이 시대 엄마로 산다는 것, 이 시대 아이로 자란다는 것, 고단하기 너나나나 마찬가지다.’
나는 가끔 내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신나게 놀려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과거에 우리가 부모세대들에게 느슨한 환경에서 여유 있게 교육받았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최소 고졸이상인 고학력 부모들 밑에서 그들의 실패와 성공을 거울삼아 빡빡한 시간 관리로 사육 당한다.


  어쩌면 과부하 된 교육 커리큘럼 속에 저 어린아이(요즘 7살이면 결코 어린아이로 대접받지 못하는)들은 성공에 대한 콤플렉스로 교육과 세상의 벽을 향해 좌절과 저주를 퍼부을지 모른다. 또래들과 경쟁해야 하는 그 숱한 긴장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나 있을까 하는 노파심도 든다.


  열 달 태교가 10년 공부보다 낫다며 뱃속에 든 아이에서부터 2세, 3세에 이르기까지 영어 테이프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오감교육에 일찌감치 한글, 한자교육까지 하는 세상이다.


  예능 쪽은 또 어떤가. 미술은 3학년 전까지 대부분 시키고 피아노는 7세가 되면 거의 일괄교육에 들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에 들어가면 또 다른 악기를 하나 더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영어 조기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몇 단계 업(up)되어 모두 음악가이며 화가이며 논술위원이며 창의적인 발명가들이다. 답답할 정도로 달아오른  이 교육의 열기 속에 아이들이 정체성을 찾고 지킬 수 있을까.
점점 더 높아만 가는 교육비의 부담과 온갖 종류들로 난무한 정보의 홍수 속에 내 주관을 갖고 아이들을 다루기도 두렵고 버거워 진다. 마냥 아이들을 아이답게 놀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 저 깊은 산속 움막 하나 짓고 산나물에 된장으로 쌈 싸먹어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어디 없나!’


  나의 아이들아, 엄마 아빠를 원망하지 마라. 우리가 너희를 다잡는 것은 앞으로 너희들의 삶이 저 격렬히 흘러가는 흙탕물에 말려들지 않을 지혜를 가지기를 바래서이다. 또한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단한 나뭇가지 하나라도 붙잡을 수 있는 정신력 강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부득이 오늘도 너희를 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6년 0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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