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말 복 많이 받았습니다. 쿠션 좋은 침대가 있어 편히 잘 수 있고 책상에 컴퓨터까지 있어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으니 이만하면 부자잖아요.”
조마면 신안리 중동마을 배견(알비노·55세)-조순자(마리아·43세) 부부는 부자다. 남편 배견씨는 하반신을 못 써 거의 침대에 엎드려 있고 부인 조순자씨는 왼쪽 수족을 못 써 방안을 다녀도 쓰러질듯 뒤뚱거리는 가난한 장애인 부부지만 마음이 부자이기 때문에 웃음을 잃지 않는다.
“펜팔을 하다 만났습니다. 현재도 방송되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인 KBS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에 제가 쓴 수기가 방송됐었는데 방송을 듣고 경상도 조마에서 한 총각이 편지를 보내와 3년 넘게 사연을 주고받았는데 마음이 끌려 결국 결혼을 하고 말았지만 참 잘했다 싶습니다.”
배견씨가 먼저 청혼을 해서 1986년 처지가 비슷한 장애인 신분으로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이때 배견씨는 서른넷 노총각이었으며 조순자씨는 배견씨보다 열두 살 아래인 스물 둘 어린 처녀였다. 말하자면 띠 동갑인 것이다. 신혼살림이라는 게 군용 침대 하나뿐이지만 두 사람 모두 글을 써 그런지 마음이 통하고 마냥 행복했다.
서울이 친정인 조순자씨는 재미있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신이 나고 손님이 와도 침대에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는 배견씨 역시 시종일관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기분 좋게 웃었다. 이야기 하는 아내나 이야기를 듣는 남편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도 해맑아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닙니다. 저는 11살 때 뇌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고 한쪽 수족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반신불수가 됐고 남편은 허리가 몹시 아파 병원에서 척수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에 두 다리 다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됐습니다.”
그래서 서로는 팔과 다리, 손과 발이 돼주는 것이다. 이렇게 불편한 몸이지만 4년 전 이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가게를 했다. 말이 좋아 가게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보따리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보따리를 펴놓은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진열해 놓은 물품이 얼마 되지 않는 작은 구멍가게였다.
장애인 부부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문을 닫고 말았지만 이들은 즐겁게 살아간다. 정부에서 기초생활비와 장애인수당을 주기 때문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웃는다.
형의 집이지만 집이 있고 역시 형이 사준 것이지만 차가 있어 휠체어를 타지 않고도 성당을 갈 수 있다. 아주 가끔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여행도 할 수 있다.
하는 일이라곤 글을 쓰는 일. 쓴 글을 ‘좋은 생각’ 등 잡지와 라디오 방송, 자신들이 출석하는 황금성당 주보에 발표하는 일인데 황금성당 전재천(암브로시오) 주임신부는 그냥 보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단행본으로 엮어주었다.
“아름다운 부부의 아름다운 삶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글을 읽는 우리의 마음도 아름다워 질 것”이라며 2002년 가을 ‘그대는 나의 손 나는 그대의 다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 배포했다. 판매 수익금은 복지기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엔 어디 투고해서 발표되고 원고료를 받는 재미로 글을 썼는데 이제는 글 쓰는 것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황금동성당 홈페이지나 부곡사회복지관에서 계간으로 발간하는 ‘나눔자리’에서 우리 부부의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등단한 문학인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부족합니다만 우리들이 마음을 다해 쓴 글이니 흉보지 마시고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자녀 없이 서로가 ‘큰 아들’, ‘예쁜 딸’이 돼준다는 이들 부부를 두고 방을 나오니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햇살이 이집 마당에 너무도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