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5-02 20:59: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원격OLD
뉴스 > 종합

살며 생각하며

미꾸라지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7년 08월 30일
 

살며 생각하며




미꾸라지




노경애(수필가)




골목선술집 앞에서 술 취한 두 아저씨가 대낮부터 싸움을 한다.


 “이 미꾸리 같은 놈아, 또 술값 안내고 도망칠려고 했지?”


 “사람 잡는 소리 그만해라. 내가 언제 그랬노?”


 급기야 서로 멱살을 잡더니 육탄전까지 벌어졌다.


 구경이나 난 것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고층건물에서 창문을 열고 빼꼼이 내려다보는 삼삼다방의 아가씨, 손님에게 생선을 팔던 평양댁의 시선이 선술집에 멈추었다. 나는 싸움 구경보다 미꾸라지라는 말에 귀가 열려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꾸라지는 논도랑에서 쉽게 볼 수 있던 흔한 물고기로서 서민들의 지친 몸을 추스려주는 먹거리의 재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꾸라지를 일컫는 말은 냉정하리만큼 인색하다. 요리조리 교묘하게 잘 빠지는 사람을 ‘미꾸라지 같은 놈’이라 하고 집안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고 하며  없는 사람이 잘난 척 하면 ‘미꾸라지 용트림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빈정대는 말뿐이니 그 소리를 들은 상대방이 서슬이 퍼렇도록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미꾸라지는 아스라이 놓여있는 추억의 한 자락이다.


 고향집에서 실개천을 지나 시오리쯤 걸어가면 다랑이 논이 나왔다. 그곳에는 야트막한 웅덩이가 있었는데 가뭄이 들면 아버지는 그 물을 퍼서 농사를 지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농사일을 마치고 덤벙의 물을 모조리 퍼내셨다. 작은 덤벙 속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흙에 뒤범벅이 된 크고 작은 미꾸라지가 펄떡이며 재빨리 뻘 속에 몸을 숨겼으나 아버지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들통 가득 잡은 미꾸라지에다 왕소금을 한줌 뿌렸다. 미꾸라지는 들통이 움직일 정도로 몸부림을 쳐댔고 뚜껑을 열어 보면 거품을 토해내며 서로 몸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죄를 짓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끽끽 소리를 내는 미꾸라지의 울음소리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후 나는 추어탕을 먹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서 추어탕을 끓이려고 미꾸라지를 사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춤거려진다. 미꾸라지에게 사정없이 소금을 칠 때마다 내 이웃에게 호된 질타의 말로 가슴 저미도록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되돌아본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내 가슴속에 아직 풀리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한 치 원망도 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분골쇄신하여 맛있는 추어탕을 내 놓는다. 어쩌면 미꾸라지를 일컫는 속담은 서민들이 가진 자들을 빗대서 하는 말일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남편이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한 부인이 아이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내려왔다. 피멍이 된 아버지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대문에 싸움은 끝이 났다. 우르르 몰려왔던 사람들은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싸우던 두 아저씨도 선술집 앞에 패잔병처럼 헐떡거리며 앉아있다. 옷은 찢어지고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소금기가 배여 기진맥진하던 미꾸라지 같다. 아이 아버지가 먼저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더니 손을 내 밀며 화해를 청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꾸라지만도 못한 놈, 오죽하면 미꾸라지가 꾸중 물을 일으킬까.”


 힘든 삶의 몸부림치는 어려운 사람들과 같은 처지의 미꾸라지를 옹호하는 마음이 되어 나는 속설을 뒤집고 있다.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7년 08월 30일
- Copyrights ⓒ김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배낙호 김천시장, 송언석 국회의원과 원팀 국비확보 광폭행보..
황산폭포, 30억 야간 경관조명 사업 취소 결정..
새마을운동 제창 55주년, 제15회 새마을의 날 기념식..
시설관리공단, 추풍령테마파크에 그늘막 및 벤치 설치로 방문객 편의 증진..
딸기 수직재배, 미래농업의 꿈을 키우다..
이철우 도지사, 영덕 노물리에서 전화위복버스 첫 현장회의 열어..
월드옥타 안동에서 글로벌 경제 협력의 장 열다..
대신동 통합방위협의회, 환경정화 활동으로 경북도민체전 성공개최 기원..
향토애 담아낸 수채화로 평온과 위안을 선사..
김천대학교 유니라이트 동아리, 첫 봉사활동..
기획기사
김천시는 매년 차별화된 주거복지 정책을 선보이며,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25년에도 저출생 문제 해소와 시.. 
2024년 여름, 김천시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봉산면에는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으며, .. 
업체 탐방
안경이 시력 교정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그 역할이 변화해가는 트랜드에 발맞춰 글로벌 아이웨어(eyewear)시장에 도전.. 
김천시 감문농공단지에 위치한 차량용 케미컬 제품(부동액, 요소수 등)생산 업체인 ㈜유니켐이 이달(8월)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패 .. 
김천신문 / 주소 : 경북 김천시 충효길 91 2층 / 발행·편집인 : 이길용 / 편집국장 : 김희섭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의숙 / Mail : kimcheon@daum.net / Tel : 054)433-4433 / Fax : 054)433-200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67 / 등록일 : 2011.01.20 / 제호 : I김천신문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8,285
오늘 방문자 수 : 49,376
총 방문자 수 : 97,848,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