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피그말리온 효과의 빛과 그늘
이태옥(수필가)
희랍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상아보석에 정성을 다해 자기가 이상으로 하는 아름다운 여성상을 조각했다. 완성 후에 아무리 봐도 살아 있는 여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조각상이 생명이 있는 여성이기를 간절히 갈구했다. 피그말리온의 믿음과 정성에 감동한 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상대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신뢰로 대할 때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변화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칭찬과 믿음 소망이 지극히 간절함에 상대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하고 변화하는 현상을 교육에서 이용한 것이 칭찬 교육이다. 누구든 칭찬받기를 원한다. 논어 첫머리에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이 군자가 아닌가 결국 군자도 알아주기를 바라고 믿어 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알아 준다함은 믿음(여기의 믿음은 교육적 측면의 뜻이지 종교적 측면에서의 뜻이 아님)이요 믿음은 신뢰하는 마음이다. 믿음의 행동화가 곧 칭찬이요 찬미다. 믿음으로 대상에 대한 칭송이 나오고 신뢰로 인하여 칭찬이 나온다. 믿음은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를 알아주는 마음이다. 현대 교육에서 관용과 칭찬이 훈계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교육의 한 수단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실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교육자가 피교육자를 질책하기보다는 훨씬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칭찬 교육을 장려하는 것은 더 좋은 인성과 자질을 계발한다는 사실에 있다. 칭찬은 사람을 신나게 하고 힘을 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칭찬에 대한 강박관념이 작용하여 무조건 칭찬으로 일관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 경우 칭찬은 가치를 떨어뜨리고 욕이 되는 수도 있고 혹시는 칭찬받은 사람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조건적 칭찬은 칭찬을 단지 교육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데서 오는 오용이다. 칭찬은 시시비비(是是非非)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고 교육 차원에서 행해져야 한다. 혹시는 본뜻과는 달리 힘을 주려고 칭찬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에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칭찬에는 진정성과 애정을 가지고 신뢰가 가도록 해야 한다. 항상 결과만으로 칭찬하지 말고 과정을 중히 여겨 보면 칭찬거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훈계나 질책이 쉽기는 하나 믿음으로 신뢰하며 칭찬하는 교육은 그대로 교육의 목표인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발성과 성취감을 주고 그리고 창의성도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육도 창의적이고 자기계발의 인간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언하고 싶은 것은 시시비비에 근거한 애정을 가진 칭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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