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겉 색깔과 속 색깔
조병우(김천제일교회 담임목사)
콩은 그 색깔이 노랗고 팥의 색깔은 붉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콩의 꽃 색깔과 팥의 꽃 색깔을 물으면 먼저 콩꽃은 노란 꽃이고 팥꽃은 붉을 것이라고 대답하기 쉬울 것입니다. 대개는 콩과 팥은 보았지만 콩의 꽃과 팥의 꽃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콩의 꽃은 붉고 팥의 꽃은 노랗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것과 연상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뛰어 나게 잘하면 그 사람은 다른 것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연기를 잘하는 배우나 말을 잘 하는 아나운서 같은 사람들이 정치에서 쉽게 인정받는 것을 봅니다. 그 사람들의 정치적인 역량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정치에 대해서 연기만 잘해도 그 사람이 정치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겉을 먼저 봅니다. 속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거니와 겉에 대한 호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실체는 그 사람의 내면입니다. 인생의 삶은 그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는 겉 색깔과 속 색깔이 있습니다.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겉 색깔을 그것의 색깔로 이해를 합니다. 사과를 볼 때도 속은 하얀 사과지만 겉이 붉으면 빨간 사과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빨간 껍질은 깎아버리고 하얀 속살을 먹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경력이 그 사람의 색깔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실체 색상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인생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의 색깔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속기 쉬운 것은 자신의 모습이 겉의 색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언제나 그 사람의 껍질이 벗겨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중계 방송하는 것을 보면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뛰고 해설자는 그 선수들을 평가합니다. 해설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해설자가 운동장에서 뛰면 정말 잘 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해설자가 실제로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생활도 운동선수와 같이 실제로 잘 하는 사람이 있고 해설자처럼 실제로는 잘하지 못하면서 이론적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활은 선수로 하는 것이지 해설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선수의 실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해설자가 해설을 잘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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