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2002년 대통령선거 이회창 후보가 또 출마한다는데
김용대(변호사·한국자유총연맹 김천시지부장)
“장군 저희들에게는 아직도 13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정유재란 때 원균의 실패로 조선 수군은 전멸위기에 처했으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차 임명된 지 약 40일 만에 기적적으로 일본 수군 133척을 물리치는 명량대첩을 기록한다. 이순신과 약 100명의 군사는 전란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이순신의 명량해전은 운이 많이 따른 전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과 2002년 대선에서 두 번 실패한 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이순신 장군의 기사회생을 고사로 삼아 다음달 19일 대통령 선거를 약 40일 남겨 두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민 20%가 아직도 총재님을 지지하고 있다” 는 참모들의 유혹에 흔들렸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2002년 12월에 약 1천만표가 넘는 표를 득표하고도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후 눈물을 흘리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그의 휘하에 충성스럽고 유능한 참모들은 모두 떠나고 이성을 잃어버린 맹신적인 세력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50% 이상이 지지하는 한나라당이 당내 경선을 통해서 선출된 후보가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는 것이 명분이 있는 행위일까? 아직도 이회창 전 총재를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충성심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두 번에 걸쳐서 약 50만표차로 낙마한 한을 풀고 권력을 잡아 보고자 하는 욕망만이 남아 있는 것일까?
과거 이 전 총재는 1981년부터 10년간 대법관으로 근무하면서 헌법우위의 법해석, 소수자보호의 가치관으로 법조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으로서 법에 따라 청와대도 감사했고 국무총리 시절 헌법에 따른 권한 행사로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관계를 빚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국민들은 대쪽 같은 선비정신과 그 기개에 감동받았다. 국민들도 이 전 총재가 꼭 대통령이 되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시대의 가치 즉 부정부패에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대통령과 정부를 실현해 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고귀한 이미지에 반하는 아들 2명의 병역비리 의혹과 이인제의 탈당과 출마, 여당의 네거티브 공세와 2002년 월드컵 4강신화로 인한 정몽준의 급부상과 단일화 이벤트에 아깝게 낙마했다.
2002년에 제기되었던 네거티브 의혹이 법적으로는 허위로 판명되었지만 이것은 탈당과 출마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1천만표를 찍어 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씩 이나 선거막판에 무너졌던 이회창의 실패는 하늘의 뜻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정체성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원칙을 중시했고, 과거 후진적인 파당정치의 후유증을 일소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운영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회창의 출마선언은 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다수 국민들을 실망케 하는 것이다. 그는 10년 전에 한나라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고 2007년 대선을 위한 한나라당의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경선을 통해 선출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50%가 넘는 상태인데 어찌 불안한 후보 운운하면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수 국민들은 좌파식 정권을 우파로 바꾸자는 것이고 이 시대의 정신은 국민들을 통합시켜 소모적인 이념논쟁 즉 정치과잉 현상을 끝내고 경제문제를 해결해서 일류국가로 나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들의 부(富)를 축적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최대 과제라고 확신한다. 국민들은 좌파식 사고에 가까운 정당후보와 한나라당 후보의 간명한 대결을 원할 뿐 한나라당의 분열을 원치 않는 것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엘 고어 민주당후보는 일반 유권자 득표에 앞서고도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에 밀려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엘 고어는 44세부터 8년간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할 정도로 정치 엘리트였다. 만약 미국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작업 재검표 결정을 중지시키지 않고 재검표를 했다면 결과는 뒤집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유권자 약 1억명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약 200표차이로 낙선한 것이다. 그래도 엘 고어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2004년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엘 고어는 위대한 패배자였다. 그는 환경운동에 전념한 공로로 2007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되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큰 선거에서 한 번 실패한 자에게 두 번씩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 정치의 우월성이 아닐까?
세계 12위의 교역규모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97년과 2002년 선거의 의외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또다시 선거의 의외의 변수에 무임승차하려는 이회창 전 총재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는 민주주의 방식을 파괴한 반칙행위자로서 낙인찍힐 것이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옛 선현의 가르침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