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교육이 중요시 되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학교 공부가 모든 것에서 우선시 되어 우리글을 다 익히기도 전에 벌써부터 외국어를 당연시 하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교육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기도 전에 숫자가 주는 비교우위의 행복감을 배워가며 자라는 세대에게 언제쯤 편안한 일상을 얘기할 수 있을까 싶다.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사회적 양심과 실천적 사고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이라 생각한다.
교육의 목적이 제 혼자의 삶을 추구하는 단순한 지식인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치에 부합하고 사회규범을 존중하는 사회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이런 문제는 맹목적인 학습이 아니라 화목한 가정생활, 건전한 학교생활, 직장생활에서 실천적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름진 토양에서 작물이 잘 자라듯 교육에도 질서정연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교통안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차가 올 때는 길을 건너지 말라고 하기에 앞서 사람이 건너고 있을 때 모든 차는 반드시 정지해야 한다고 먼저 가르쳐야 맞는 얘기다. 차에 대해 사람이 상대적 약자라 보호와 방어를 위해 건너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급기야 횡단보도에도서 보행자 위협이 가중되는 것은 “사람이 먼저”라는 교육과 인식의 부재 탓이 아닐까.
또, 도로확장을 하기 전에 좁은 도로를 가득 메운 불법 주정차 차량의 "양심"부터 바르게 짚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주차장이 현저히 부족한 도로여건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이중주차, 보도침범 주차는 도로기능을 마비시켜 본인도 결국 똑 같은 피해를 입는다. 행락지나 출퇴근 시간대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최소한 “공공의 입장”을 고려치 않은 -규범이 무시되고 양심이 없는- 후진국형 운행행태가 아닐 수 없다.
실상, 책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정작 대문을 나서면서 부터 공부가 연속된 것이란 것을 우리 부모는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수많은 무단횡단과 무너지는 정지선 사이로 책 밖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에게서 또 배워야 한다. 평가의 대상이 아니므로 조금 틀려도, 빨라도, 눈치껏 가로질러도 상관이 없다. 여기서, 다음 세대는 편법이 무언지를, 남이 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도 된다는 것을 현장체험을 통해 익히게 된다.
몇년 전 텔레비전의 한 프로에서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해야 한다고 참석한 토론자 대부분이 강조하고 동의의 목소리가 잇따랐다고 한다.
이윽고, 시청자 전화상담 시간이 되어 시민이 “참석한 토론자중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송국에 나오신 분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는 것인지,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시회발전에 기여하거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례다.
운전교습에 있어서도 그렇다. 처음 교습에서 평생의 운전습관이 결정된다.
운전을 배우기 이전에 나의 운전으로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도, 남의 행복을 깨트릴 수도 있다는 살벌한 가르침과 양보운전이란 미덕의 가르침은 왜 없는 걸까.
지금 내 운전습관은 나를 보며 자라는 아들, 딸의 장차 운전모습이다.
결국, 세 살 버릇 여든을 지나 자손대대로 간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운전대를 잡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