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리포 사랑 박 화 남 시인·객원기자 부직포 같은 눈이 내린다. 김천에 눈이 와서 태안에도 눈이 온다. 아니 태안에 눈이 오니까 김천도 눈이다. 지난주 토요일 5학년인 딸과 딸의 친구, 친구의 엄마와 태안으로 향했다. 12월 말에 계획한 일이 갑작스런 한파에 뒤로 미루다가 이제야 출발이다. 남의 일은 늘 내가 좀 여유 있을 때 한다는 것이 좀 치사하다. 자원봉사를 한다는 계획이지만 저쪽 사정보다 추운데 아이들이 제대로 할까 걱정하면서 무작정 달려갔다. 대전으로 가서 공주를 지나 보령으로 향했다. 조개축제를 여는 ‘천북’이라는 곳도 왠지 흥이 오르지 않고 오천항도 잠잠했다. 대천해수욕장에 가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겨울바다를 찾았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곤 했지만 바다는 다른 때보다 더 침묵했다. 아무런 흔적이 없었지만 식당은 텅텅 비었고 을씨년스러웠다. 바다를 찾은 사람들도 식당에 들어갈 기세는 아니었다. 식당은 열려 있었지만 기름유출로 먹을 수 없다는 생각들인 것 같다. 태안반도의 기름유출이라는 보도는 모든 서해안을 싸잡아 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관련이 없는 곳도 불안한 것이다. 태안군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지역이라 우리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해 어스름이 깔린 길을 달렸다. 해미IC를 통해 몽산포로 향했다. 농협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몽산포 주변 펜션에 방을 구했다. 주변에 펜션이 많았는데 불 꺼진 집이 많았다. 우리가 자는 집과 옆집만이 손님이 여럿 있었다. 주인은 쉽게 가격을 깎아 주었다. 날씨가 흐려서 별 하나 없었고 깜깜한 밤이라 우리는 백 미터 앞이 바다라는 것도 모르고 그 밤을 그냥 TV를 보며 보냈다. 아침이 되어서야 썰물로 드러난 갯벌만 한 바퀴 돌았다. 이곳 어디에도 기름의 흔적은 없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따뜻한 방이 아까워 12시가 되어서야 나섰다. 경찰에게 물으니 모항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기에 갔더니 여러 대의 버스가 나오고 있었다. 오전에 모두 함께 모여 다 마쳤다는 것이다. 개인별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접수를 받아 단체로 움직이며 하는 것이다. 오후에는 만리포에서 한다고 해서 우리도 부랴부랴 만리포로 향했다. 이곳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옅은 기름 냄새가 났다. 다른 곳과 달리 한바탕 전쟁을 치른 흔적이 역력하다. 식당들은 모두 문이 잠겨 있고 사고 날부터 장사를 하지 않아 먼지가 뽀얗다. 생생한 기름 유출 현장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그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울컥 하였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까지 무거운 기름이었다. 까만 기름덩이가 지금은 깨끗한 물로 변해 있었다. 기름을 닦기 위한 옷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고 기름을 담은 고무 통들도 줄지어 있었다. 입구에 반야월 작사, 박경원의 노래인 ‘만리포 사랑’이라는 노래비가 서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번씩 따라 불렀을 노래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안녕히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둥실 춤춘다♪?? 이곳도 기름이 대부분 제거되었지만 가장자리에 좀 남아 있어 부직포를 던져 넣고 있었다. 우리는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옆에서 묵묵히 부직포만 던져 넣었다. 이제 자원봉사자보다 주변을 탐색하려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우리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며 당시를 짐작해보고 이렇게 맑아진 모습에 감탄하기도 한다. 나오는 길 곳곳에 감사의 플랜카드와 피해보상에 대한 내용도 가득 걸려 있었다. 겨울바다를 찾는 사람들로 한창 분주할 이 때 날벼락을 맞아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어 안타깝다. 아직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자원봉사도 많이 필요할 테지만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져 활기 있는 해변을 만드는 것도 절실하다. 빠른 시일 내 잠긴 문이 열리고 굳은 얼굴이 활짝 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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