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까치 같은 사람 김 수 화 시인·객원기자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우린 살아가고 있다. 방금 한 말이 전화선을 타고 다른 사람의 귀로 흘러들어 가는가 하면 그로 인해 사소한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치 제기차기의 법칙 같다. 제기 차기를 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자기가 차 올린 제기가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엔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억지로라도 가질 수 있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가 부재중이었다면 최소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는 벌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남의 말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집으로 찾아가는 수고까지는 힘들지 싶다. 휴대전화의 등장 이후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없이 곧바로 속사포처럼 내 뱉는 언어는 그것이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른 사람을 화제로 삼을 때가 더러 있다. 일테면 걱정 같고 관심 같은 안 해도 될 남 걱정 같은 거 말이다. 남의 말은 안 하고 살면 좋을 테지만 안 듣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말이 있는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 한 마디도 안하고 살수는 없는가보다. 그런데 별 얘기도 아닌 것을 꼭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 국민이 소유한 휴대전화기의 쓰임이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까치 같은 문화로 발전하였으면 좋겠다. 상대가 들어서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는 얘기라면 전하지 말고 기쁘고 좋은 일만 전하는 곳에 쓰인다면 얼마나 밝고 행복한 세상이 되겠는가?
인간은 본디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몇 세기를 걸쳐 존경받는 철학자도, 예수님도 소위 말해 안티가 있었는데 우리가 어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게만 비춰질 수 있으며 바른 말만 하며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요즘같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어도 단지 남보다 조금 잘나고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시기와 질투의 도마 위에 놓이는 세상에서 말이다.
설사 조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을 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를 진정으로 걱정한다거나 발전을 위한 진심담긴 말이 아니라 친하다는 명목 아래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만 전하는 것 같다.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 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꽃소식 반가운 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엔 제발 우리 주위에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까치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말을 전하기 전 입장을 바꿔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무리 친하더라도 내가 만약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내 기분은 어떨까 하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