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단 예장(禮裝) 김종태 (시인·호서대 겸임 교수) 검정 정장, 노랑 넥타이 이것은 아주 오래된 나의 예장 모오닝코트를 입고 삼동(三冬)의 산(山) 깊이 죽으러 간 지용(芝溶)의 ‘예장’ 속 사내가 울고 있다 그를 따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禮)의 끝을 백금빛 시계로 갈무리한다 황홀한 박수를 기대하며 무대로 향할 때 피의 뜨거움을 노랑 견(絹)으로 동여매고 마음의 서늘함을 검정 모(毛)로 감싸니 어제 그어졌던 아침 윗도리의 붉은 분필 자국은 검은 대지의 혈흔처럼 경계를 지워간다 데면데면 아버지 영정을 습관처럼 마주하면 무슨 할 말이 남은 듯 성에 속 희미한 아침은 창밖으로 하나 가득 구름을 몰고 온다 어젯밤 연속극 주인공의 운명을 곱씹던 어머니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새 와이셔츠를 다리신다 나는 이토록 꼿꼿한 옷차림을 한 채 어머니와 나의 운명을 포석(布石)처럼 늘어놓는다 불현듯 도래할 설국(雪國)의 검은 하늘 위에 오로라를 띄우듯 환한 넥타이를 걸치고 싶다 나는 무슨 세상을 떠나야 하나 예장에 기대어 다스려 볼까나 육신의 불을 예장에 기대어 풀어 볼까나 마음의 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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