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진달래꽃 고운 추억 이윤숙
아포읍 국사리 역전장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엔 계절마다 특색이 있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일 한두 가지쯤 있어 더욱 좋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여름이나 가을과 달리 봄은 ‘봄 처녀’라고 했을까? “봄 처녀 제 오시네”란 노랫말도 있지만 처녀들은 수줍고 여리고 아무 눈에나 띄지 않고 눈여겨보는 이에게 보이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 가까이 봄이 왔다고 느낄 때는 이미 발밑의 봄이 무르익을 때다. 허리를 굽혀 입맞춤하듯 땅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야 봄이 보인다. 얼었던 냉이 잎에 생기가 돌고 마른 잔디 속에서 쑥이 파릇파릇한 잎을 피우고 실낱같이 제비꽃이 피어 시선을 집중했을 때 눈 안에 봄이 들어온다. 봄은 여인들을 닮았다고 할까. 다른 꽃도 그렇지만 봄에 피는 개나리나 진달래는 꺾으면 금방 시든다. 봄이면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어릴 때는 거지들이 많았다. 봄이면 어른들은 들에 나가고 처녀들이나 어린애들은 집에 남아 집을 보기 일쑤였는데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손가락처럼 구부린 철사를 옷소매 끝에 삐죽이 보이게 내밀고 다니는 거지였다. 인상까지 험해서 동냥을 달라고 하면 겁이 나서 귀한 쌀도 아까운줄 모르고 한바가지 퍼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마음에 차면 그냥 가지만 어른이 없어서 못준다고 하면 “나하고 같이 가서 살자”고 하면서 다가오거나 때릴 기세로 지팡이를 흔들흔들 했다. 그쯤 되면 처녀들이나 애들은 혼비백산하게 돼있다. 그래서 제일 무서운 것이 거지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나병환자. 사람 간을 빼먹으면 낫는다는 헛소문이 돌아 45년 전 일인데도 그 놀란 가슴은 지금까지도 뛰는 것 같다. 그 골짜기에 우리 밭과 논이 있어서 좀 멀어도 8~10살 꼬마인 6명의 동내 친구들은 지리를 잘 아는 나를 앞세우고 진달래꽃을 꺾으러 갔다. 그런데 가장 앞서 가던 애가 중간쯤 가다 “엄마야!” 하는 비명과 함께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도 놀라서 같이 뛰었다. 산을 내려오고도 한참을 가다가 숨도 차고 뒤를 돌아다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야 걸음을 멈추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저 산에 문둥이가 잡으려고 쫓아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뛰어왔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같이 갔던 한 친구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무서워서 찾으러 갈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옆집 할아버지가 친구에게 신발을 주면서 “누구 것인지 모르지만 가져다주라”는 거다. 그러니까 사건의 주인공은 옆집 할아버지였다. 산에 나무를 하다 앉아 쉬고 있는데 우리가 올라가니까 놀라게 해주려고 벙어리 흉내를 내셨다는 거였다. 뒤따라오면서 신발도 주워 오신 것이다. 다음날 엄마 따라 그 밭에 갔는데 어제는 저 높은 곳에서 어떻게 뛰어내렸을까?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날의 일들을 친구들도 기억할까? 그 골짜기에 지금은 봄이 와서 꽃이 피건만 진달래 꺾으러 갔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흰머리가 많은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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