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 곁에 살기 배창환 시인 . 김천여고 교사 시를 잘 읽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활 모습일 것이다.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심지어 사회 각 부문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교양인들조차도 거리낌 없이 “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이란 말을 화두처럼 던지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그런 전제를 달면서라도 시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래도 시적인 소양이 상당히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말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평상시에 대화를 할 때 시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든 분위기다.
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시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람조차도 시인들 앞에서는 시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시에 대한 오해가 그만큼 널리 퍼져 있다는 말일 터인데 그 오해는 주로 문학 예술교육이 잘못 이루어져 왔거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교시절까지가 사실은 마지막 학습 과정이고 그때까지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문학을 접할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문학 교육은 ‘국어’교과 안에 포함되거나 고교 과정에서 ‘문학’ 교과로 독립되어 각종 필기시험의 대상이 되어 온 지 오래다. 시(詩)만을 두고 볼 때 주로 이해 중심의 교과로 인식되어 읽고 주제를 파악하고 형식상의 특징을 살펴보거나 세부적인 표현법과 감상법 등을 배우기는 했어도 정작 시를 가까이 하고 써 보고 즐기는 본질적인 시 교육은 거의 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시를 찾아보는 법을 배우기 전에 시가 어렵다는 생각과 두려움을 먼저 익히게 된다.
시는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감동을 나누기 위해 창작된다. 그러므로 시는 시인의 경험이 주된 테마가 되고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느냐가 소통의 관건이 된다. 시인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는 것이 시의 운명이다. 따라서 시는 시인의 삶 속에서 만나는 어떤 순간의 감동이 시 창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고 쉽게 썼건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썼건 시인들은 우선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친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감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각종 장치가 시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 전제 위에서 독자들은 좋은 시를 판단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 곧 ‘이해와 감동’이라는 잣대를 갖고 시를 찾아 읽고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를 자신 있게 찾아 읽고 암송하고 즐기는 활동은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면서 우리 사회 전체의 창의력과 사고력, 부드러운 정서를 활짝 여는 튼튼한 기틀을 다지는 활동이다. ‘시는 모국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정수(精髓)’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시를 버리고 사는 삶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사는 삶인가를 잘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시를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생활에서 풍성하고 질 높은 삶과 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좋은 시를 찾아 읽고 곁에 두고 즐기는 생활 곧 ‘시 곁에 살기’ 위해서는 좋은 시를 찾는 법, 읽고 외우고 낭송하는 활동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름다운 시는 사람과 그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가꾸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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