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실감해 본 것도 나에게는 요즘의 큰 소득이다. 김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공명선거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한 보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완곡하게 고사했지만 이름만 올려놓겠다는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름만 올려 놓는다는 것이 나의 양심에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지역 발전에 대해 관심이 없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지역신문에 '총선 투표 참여'에 대한 글을 써서 홍보 대사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수행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주 초에 목회자 영성 훈련 세미나에 참여하느라 4일 동안 교회를 비운 것이 큰 이유가 된다. 시간을 놓치니 신문 마감 날짜가 지나고 자연 글을 보내는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마음의 짐이 계속 나를 압박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역 홍보를 나가는 것이었다. 지난 토일이니까 4월 5일이 된다. 이 지역엔 농사일이 시작되어 바쁜 교인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우리 부부와 후배 한 명, 이렇게 달랑 세 명이 홍보를 나갔다. 김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준비해 준 홍보 전단과 비닐 팩 선물 박스를 차에 싣고 마을과 상가를 돌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공명선거 실천하자'는 글짜가 박힌 어깨띠를 두르고, 후배에게 홍보 피켓을 들게 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반응이 좋은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빈부격차, 학력고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입장들이 분명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투표 참여 홍보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권은 왜 합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람에게 찍어야지."
"아침 6시에 가서 첫 번째로 투표할 겁니다."
"나는 지지하는 사람은 없지만 지지 정당은 있거든요. 한 표 행사할 겁니다."
이런 말로 사람들의 반응을 정리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의 선거 문화도 많이 발전했다. 돈이 없으면 공천을 받지 못하던 때도 있었고, 선거구민들에게도 일정 부분 대접을 해야 움직이던 일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치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풍토는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도 강원도 모 지역의 한 돈 많은 출마자가 돈다발은 준비했다가 드러나 여론의 몰매를 맞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외면당해 사퇴한 사건이 있었다. 구태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분위기를 웅변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뒤따랐음을 말할 나위가 없다. 관은 관대로 민은 민대로 또 언론은 그들대로 민주주의의 한 단계 성숙을 위해서 무던히 애쓴 결과이다. 하지만 이 시간 우리가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안에 아직 미분화된 선거 풍토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지 않은지. 금권뿐만 아니라 골 깊은 지역주의 학연 혈연에 연연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잔존해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시민밖에 안 된다. 인물 본위 나아가 정당의 정책 중심의 투표가 자리잡을 때, 명실상부하게 21세기의 분화 발달된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김천 지역에 단 3명의 후보만 나온 것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것도 여당 성향, 보수 성향의 사람들만으로 유권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정치 의식의 낮음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다. 정당 투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당, 제일 야당, 진보성향의 정당 등 다양한 정당을 배경으로 한 후보자들이 나와 지역 주민들과 다각도로 만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렇다도 우리의 권리를 포기해서든 안 된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격언이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에 값하기 위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을 한층 높이는 일이 지금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자각했으면 좋겠다. 지역 주민들에게 투표 참여 홍보를 4시간 가량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우리 김천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야 진정 선거가 우리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