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봄의 절정을 맛보기 위한 잔인함은 경험할수록 내면의 깊이가 더해지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봄의 꽃들은 모두 무리지어서 핀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을 때보다 무리지어 있을 때 그 가치가 높아지고 그만큼 더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이다. 화려하고 어여쁜 봄꽃 진 자리에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나고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나무에 녹색의 살이 붙고 물빛의 혈관이 흐른다. 점점 몸집을 불려가는 나무에게 눈길이 간다. 이맘때쯤에는 내가 화가였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놓치기 싫은 녹색의 모습을 깨끗한 도화지에 꼼꼼하게 옮겨서 일년내내 그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봄은 변화가 많은 계절이다. 얼었던 물이 녹아 흐르고 파릇한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지는 모든 것을 한 계절에 모두 볼 수 있다. 봄을 즐긴다는 것은 변화를 즐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첫사랑, 그 풋풋함을 새삼 떠올리기도 하고 소녀 같은 모습으로 수줍은 사랑을 기다려보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변해가는 멋진 경험을 불혹을 넘긴 이 나이에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런 일기장을 채워가고 싶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귀를 간질이고 숨어있던 생명의 열정이 새롭게 피어나면 지금부터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마음으로 조바심이 나게 하는 그런 계절이 봄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아쉬움뿐만 아니라 시간과 함께 사라져가는 열정을 놓치기 싫은 까닭이기도 하리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크게 웃을 일도 크게 놀랄 일도 없다고 한다. 물론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되고 경험함으로 새삼스러울 일이 없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상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절대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면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일상이 또 다르다. 흘러가는 대로 흐르다보면 어느 자리에서 변화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4월, 잔인한 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무성하고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 유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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