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배창환
시인·김천여고 교사
“몰락해 가는 농촌에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니 농촌과 농업은 정치적으로도 더욱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아이엠에프(IMF)나 한미 에프티에이(FTA)에서도 일차적으로 농민이 희생되고 타격을 입었다.”
아침에 차를 몰고 마을을 나오는데 부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저들끼리 재잘거리며 걷기대회 하듯이 즐겁게 가고 있었다. 5학년인 유림이와 3학년인 하림이의 등굣길이다. 두 아이 사이에 1학년 남자 아이가 누나들 따라잡는다고 열심이다. 창문을 열고 “학교 가니?” 하니까, 아이들이 일제히, “예! 학교 가요!” 한다. 말하는 것이 하도 귀엽고 예뻐서 “학교 차가 오니? ” 되물으니 또 일제히, “예, 저기까지 와요!” 한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저기’란 곳은 약 백 미터쯤 떨어진 마을 앞길이다. “그럼, 태워줄까 했는데 안 되겠네, 잘 가” 하고 속력을 내면서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까 아이들이 백 미터 달리기 하듯이 내 차를 잡으려고 엎어질 듯이 달려온다. 그 모습이 마치 작품 사진을 보는 듯이 낯익고, 참 오랜만에 보는 그림이어서 사진을 찍어둘까 하다가 그냥 마을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이 몇 안 되는 우리 마을에 이태쯤 전에 유림이와 하림이가 부모님 따라 이사 왔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십수 년 전 이곳에 들어왔을 때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도시에서 전학 오는 아이를 몇 년 만에 처음 본다며 좋아했다. 우리 아이 또래의 마을 아이들이 다 커서 직장으로 군대로 대학으로 길 찾아 떠나고 다시 마을이 비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폐교되었고 그 자리에 물류센터가 들어섰다.
유림이와 하림이는 내가 밭에서 일하면 내게 와서 궁금한 게 많은지 자꾸 묻는다. 뻔한 이야기를 일부러 말을 걸기 위해 묻는 것이다. “아저씨, 뭐 해요”, “모종 심는다.”, “무슨 모종?”, “고추하고 가지”, “이건요”, “고구마......” 나는 아이들과 말을 이어서 하는 게 하도 재미있어서 되도록 짧게 끊어서 말했다. 아이들도 그런 내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고추 모종을 심을 때 모종을 나르는 일을 자원해서 하고, 어린 상추에 물을 주면 저들이 하겠다며 물조리개를 거의 뺐다시피 하는데, 옷 버린다고 조심해라 해도 막무가내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서 흙이 키워낸 맑고 건강한 심성을 보며 혼자 즐거워하면서 아이들은 저렇게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마을을 떠나고 나면 이젠 정말 이 마을도 적막할지 모르겠다. 산업화 이후 우리의 농정(農政)은 한마디로 이런 아이들을 흙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었다. 수입 쇠고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들끓고 있는데, 농민들이 쌀과 쇠고기 수입 문제로 아우성일 때는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장차 건강과 생명 문제의 불확실성이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발등의 불로 인식되면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이 그냥 농업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생명산업임을 모두가 깨달을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길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처음 교육개혁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보충수업과 야간자습이 필요 없는 입시 제도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 보충수업과 야간자습은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더욱 강화되었고 아이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욱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다. 나는 거기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농촌 초등학교가 폐교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사회에 건강한 산소를 공급할 흙을 닮은 아이들을 길러내는 아름다운 학교로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고 나면 더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아름다움을 알고 지키는 것이 진정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