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는 것은 교육이 미래의 주인들을 길러내는 일이고 그 사회의 미래의 모습을 결정하는 일인 만큼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신중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은 그 사회 구성원 개개인 모두의 장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도 해서 전 국민이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더욱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자율화’라는 긍정적인 외피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교육·시민 단체는 물론 전국의 많은 학부모(국민) 교사 학생들이 이에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의 촛불집회에서는 학생을 포함하는 많은 참가자들이 ‘미친 소, 미친 교육’이라는 구호를 서슴없이 사용함으로써 이 조치가 가져올 가공할 수준의 공교육 파괴를 우려하면서 당장에 교육 현장에 미칠 여파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여 극단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공교육을 살리는 문제와 사교육비를 줄여나가는 일은 사실상 국민적인 합의라 할 수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마련해 왔던 최소한의 규제조차도 철폐함으로써 학교의 학원화와 시장화의 길을 활짝 터놓은 것이기에 충격과 놀라움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고 이를 ‘공교육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까지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시행 과정에서 공교육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지루하고 소모적인 ‘싸움’이 예고되어 있고 그만큼 우리 앞에 놓인 길이 험난할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조치가 포함하고 있는 고강도의 입시 경쟁이 과연 필요한 것이며 교육적인가 그리고 경쟁이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인가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지금까지 가속화되어 온 입시 경쟁은 지나친 경쟁이 청소년기의 학생들의 정서적 신체적인 성장을 저해하여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학생들의 창의력과 종합적인 사고력을 신장시키기보다 오히려 억제하고 있다는 점, 가계를 위협하는 수준의 사교육비 지출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우리 사회 안에서의, 우리끼리의 ‘살아남기 경쟁’을 통해서 소모적인 양상을 띠어 왔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나라 각 대학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볼 때 크게 낮은 현실에서 무한 경쟁을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에까지 끌어내림으로써(폐지돼 왔던 일제고사의 부활!) 이런 문제점들을 심화시키고 어린 시절에 싹을 틔우고 길러가야 할 21세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과 사고력의 싹을 원천적으로 자르고 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엄밀히 말해서 누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는 당사자와 관련된 일부 사람들의 문제이지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소모적인 경쟁은 줄이고 학생들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 속도에 맞추어 진짜 경쟁이 필요한 자리에 미래사회를 위해 ‘경쟁력을 갖춘 경쟁’의 내용을 적절히 배치하고 조절함으로써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고 다수 국민이 행복에 접근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런 고려 없이 무한 경쟁(양으로 승부하려는 저급한 경쟁!)만이 경쟁력을 기른다는 생각은 지난 세기의 미신에 불과하며 끝없는 정책 실패의 악순환만이 되풀이될 것이다. 잘못된 경쟁교육이 국민을 너무 오래 괴롭혀 왔고 일상의 행복에 족쇄를 채운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그 고통이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더 심화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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