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리(꽃밭,외산,내산,새터.광신원,달매,텃골)
대덕면소재지인 관기리에서 거창방면의 국도 3호선 변 좌우로 위치한 화전리는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남면으로 속하여 화전, 외산,내산등 3개마을이었는데 1914년 인근의 월매,기동으로 합하여 화전리라 통칭하고 대덕면으로 이속시켰고 1960년 텃골(기동)과 월매가 화전2리, 화전(꽃밭), 내산, 외산이 화전1리로 분동하고 1969년 광신원이 새로 생긴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전1리로 속하는 꽃밭과 외산, 내산, 새터마을은 모두 국도우측으로 자리잡은 마을로 장수황씨 일가들이 처음 외산(넘텃골)에 정착한 이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도로변의 화전마을은 꽃밭으로도 불리는데 풍수지리설에 마을자리가 매화낙지(梅花落地) 즉, 매화꽃이 떨어진 자리라는 명당으로 알려져 꽃밭, 화전(花田)이라 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마을앞에 월매산(月梅山)이 있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마을회관 옆에는 연안이씨 문중에서 선조 이기태(李基泰)를 추모하는 재실 첨모재(瞻慕齋)가 우뚝 서서 인근동 연안이씨 후손들의 지주가 되고 있다.
꽃밭마을 인근의 내산과 외산마을은 산 하나를 사이로 안쪽에 있다하여 안산(內山), 산 밖에 있다하여 외산(外山)이라 했다 하는데 내산은 산을 넘어와서 마을의 터를 잡았다는 뜻으로 넘터골으로도 불리는 장수황씨 집성촌이다.
외산마을앞 국도변의 도로가 크게 휘어진 부분은 예부터 박선달 모팅이라는 재미있는 지명으로 불리는데 전설에 옛날 밀양박씨 한 분이 이곳에 산소를 들인 후 후손이 과거에 급제를 했다하여 박선달모팅이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전2리로 속하는 달매와 텃골은 월매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텃골은 고려중엽에 화순최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하여 터기(基)자에 마을동(洞)자를 써서 기동(基洞)이라 적고 터골, 텃골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텃골개고랑으로 불리는 하천변 좌우로 자리잡은 이 마을 안쪽으로는 예부터 아들낳기를 소원하는 부녀자들이 돌울 던져올렸다는 아들바우가 명물로 남아있다.
인근의 달매마을은 월매산아래에 자리잡은 마을이란 뜻으로 월매(月梅), 달매 등으로 불리며 이웃한 꽃밭마을과 함께 이 마을도 매화가 꽃을 떨어뜨린 명당터에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마을뒷산인 매화산 자락 절골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는 매화사(梅花寺)터가 아직 남아있으며 마을입구에 효자의성김공명진지비(孝子義城金公鳴振之碑)와 열부청도김씨지비(烈婦靑道金氏之碑)가 나란히 서서 이 마을이 유서깊은 마을임을 대변해 주고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