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대(沮(저)溺(익)村(촌))마을 由來(유래) KBS방송에서 장수마을로 전국에 소개된 忠.孝.禮 를 중시하는 충정의 고장저익촌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벽계.명덕과함께 지례현 하북면에 속해 이었고.1914년 대림.나속과 김산군 대항면 백어와 통합되어 상거리라 하였으며. 석현면에 편입되었다.1934년 구성면에 편입되었1971년에 벽계.명덕.나곡과 대항면에 속했던 백어동과 통합되어 상거리라하였다.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김녕김씨들이 중국춘추시대 세상속세를 떠나 산골깊숙이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隱士(은사)이신 長沮(장저),桀溺(걸익)두 분의 이름에서 저자와 익자를 따서 沮溺村이라고 하던 거시 변하여 오늘의 지리대.저평으로 부르게 되었다.마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洪氏가 먼저 들어와 정착하였고.이후 死六臣(癸酉政變(계유정변) 단종 복의 모의주역인 세조2년1456년 순절) 白村.忠毅公 金文起先生의 曾孫이신 金淑蓮先生께서 1524년 세상속세를 떠나 자연과 벗하면서 살기위해 고향인 영동을떠나 이 곳에 들어와 살게되면서 김녕김씨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최근에 지은 집들은 도로와평지에 4가구가 思鄕마을을 이루고 있으나 원래집들은 마을이 300m산골 오지에 위치한 탓에 도로에서 아예보이지도 않는곳에 산을깍아 집들을 지었고 주민들은 등산하듯 집과 전답을 오르내리며 생할하였다.이런 생활습관과 백촌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것이 장수의 한 비결이기도 한것같다.마을윈편으로는 승유제가 자리잡고 있다 承裕齊는 金寧金氏 입향조를 추모하는 곳인데 承裕(승유)란 先祖(선조)를 받들면 後孫(후손)들이 福을 받는다는 뜻이다 승유제와 마을 동쪽에 약오백년된 느티나무가 文化財로 등록되어 있다 2008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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