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향으로 가는 길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추석은 제게 ‘만남’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고향 김천에 계시는 아버지와의 만남, 수원에 사시는 형님 가족과의 만남.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구에 사시는 할머니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상주에 사시는 외할머니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때가 추석이었습니다. 제가 김천에서 학교를 다니던 초, 중학교 시절에는 추석 무렵에 상주에서 김천까지 외할머니가 그 무거운 감을 들고 오셨습니다. 외할머니 댁의 감나무는 알이 참 굵었는데 그것을 제수에 쓰라고 보따리에 들고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친할머니 생각만 하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술고래 남편을 만난 탓에 부부간의 알뜰살뜰한 정도 못 나눠보고 일찍 여읜 뒤에 1남 5녀를 홀로 키우신 분입니다. 할머니는 환갑이 될 무렵에 골다공증이 심하게 와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바깥출입을 못하셨지요. 저는 어린 시절 꼬부랑 할머니의 등에 업히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니며 “할무이 업어줘요!” 하면서 졸라댔다고 합니다. 손자가 귀여워서 그 몸으로 온종일 업고 다니셨다니…….
저는 옥수수나 쌀 등을 튀긴 ‘튀밥’이란 것을 무진장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추석 무렵 김천에 오시면 시장의 뻥튀기 할아버지한테 가서 꼭 튀밥을 한 보따리 튀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추석이 오면 송편보다는 튀밥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다가옵니다.
어느 날엔가는 할머니가 시장에 가신 지 얼마 안 되어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나타난 할머니는 튀밥이 담긴 포대를 내미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승하야, 네가 튀밥을 하도 좋아해서 비가 그칠 때까지 못 기다리고 그냥 왔다. 수건 한 장 다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 포대를 들고 오셨기에 우산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할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송편 빚기의 달인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데 할머니는 주로 반달 모양으로, 어머니는 보름달 모양으로 빚었습니다. 누이동생의 것은 모양이 일정치 않았고 찌면 터져버리는 불량품(?)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처음에 몇 개 빚어보다가 처음부터 배가 터져버리는 통에 무리에서 쫓겨나고 아버지가 밤을 칼로 멋지게 조각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아버지의 밤 까기는 예술이었습니다. 밤 껍질이 보통 딱딱하지 않은데 칼로 무수히 많은 조각을 날리면서 알밤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밤 깊도록 형수와 아내는 전을 붙이고 형과 저는 제기를 닦았습니다. 차례 준비를 온 가족이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밤이 깊어가고 보름달은 휘영청 세상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추석 아침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지만 조상과의 만남은 별 의미를 지닐 수가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만나본 적은 물론 없었고 남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어 얼굴조차 모르기 때문이었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할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만남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2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어머니 사후에 두 번째로 맞는 이번 추석은 어머니와 만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추석은 만남의 시간입니다. 흩어져 살던 가족과의 만남, 고향 친지와의 만남,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영령들과의 만남.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 있는 자식들은 추석이면 부모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것이고 부모는 자식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것입니다. 시골에 계신 늙은 부모는 추석이면 객지나 나가 있는 자식을 만나게 되니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올해 추석은 오래 떨어져 있는 가족이 반갑게 만나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