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마을이야기(167) 증산면편(마지막회) ▷부항리(釜項里) <지난호에 이어 계속>
월섬마을은 옛날부터 정월대보름과 추석때 달뜨기난당이라는 산봉우리에서 달맞이를 하는 봉우리가 바다위의 섬처럼 우뚝 솟아있다하여 달월(月)자에 섬도(島)자를 써서 월도(月島)라 적고 월섬이라 했다.
한적골은 일대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있다하여 한적골(閑寂谷)이란 지명을 얻었으며 감나무골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이있어 감나무 시(枾)자를 써서 시동(枾洞)이라 적고 감나무골이라 했다.
그 아래 새터는 병자년 수해때 집을 잃은 수재민들이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어졌다하여 새마을, 새마, 새터라 했고 이전부락은 새터에 살던 일부주민들이 이전해 세운 부락이라 하여 이전부락(移轉部落), 이전불이라 했는데 마을에 용바우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음으로해서 용암(龍巖), 용바우로도 불렸다.
부항이라는 지명으로 인해 부항면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마을로 오기도하고 우편물이 잘 못 전달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용바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성산전씨 집안에서 명당으로 소문이 난 이 바위밑에 조상의 묘를 들인 후 민심이 흉흉하자 이를 잠재우기위해 산소의 혈맥을 끊었고 이때 바위속에서 용의 형상을 한 말이 나와 울면서 날아갔다는 것이다. ▷황항리(黃項里.누루목.임평) 부항리로 속하는 이전불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한참을 오르다보면 남암천의 발원지이며 지례면 관덕리 구수골과 접해있는 황항리를 만날 수 있다.
마을 왼편으로 넘어가면 지례 관덕리 구숙골로 연결된다 조선시대까지 성주목 증산면으로 속했고 1895년 성주군 내증산면, 1906년 지례군 내증산면으로 이속되어 1914년 임평, 노루목을 합해 황정리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항이라는 지명은 1700년대 초 오봉집(吳鳳集)이라는 분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살면서 마을일대의 지형이 풍수지리로 볼때 황소(黃牛)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하여 누를황(黃)자에 목항(項)자를 써서 황항(黃項)이라 적고 누른목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 누루목이라했다고 알려진다.
또 앞쪽의 임평(林坪)은 처음 임씨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하여 붙은 지명인데 이 또한 음이 변해 임패이라 불린다.
일설에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주민들간에 싸움이 나서 사람을 두들겨 패 죽인 마을이라하여 인패이라 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입구의 수령 4백년을 자랑하는 동목 정자나무는 풍흉을 예견한다는 유명한 나무로 봄에 잎이 한꺼번에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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