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꽃을 죽였다 살리는 여자
강순희
주부·부곡동 우방아파트
복지관에 한식 조리를 배우러 갔다가 우연히 화장실 문에 걸려 있는 소품 액자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시작한 것이 압화 즉 꽃 누르기다. 꽃을 시트 스펀지 종이에 겹겹이 끼워 압판에 눌려 말리는 것이다.
벌써 1년 반이 되었지만 다양한 기법을 배우니 배우면 배울수록 매력과 함께 창작의 묘미가 느껴지고 어렵다.
처음에는 주어진 재료로 기초를 응용했다. 악세사리, 손거울, 명함판, 달력, 벽시계, 요지꽂이 위주로 배우다가 지금은 액자를 주로 만든다. 만든 작품을 처음에는 장식장에만 가지런히 놓았다가 숫자가 늘고 공간이 좁아져 벽으로 하나 둘씩 자리를 옮겼다. 액자 뒤에 만든 날짜를 연필을 적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품에 필요한 재료를 사서 할 때도 있지만 계절마다 나는 것이 달라 들로 산으로 직접 채집하며 재료를 준비하기도 한다. 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꽃의 생명은 너무 짧아 아까울 때가 많이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과감하게 기절시켜 잽싸게 말려야 액자 속으로 회생시키는 반영구적 작품이 된다. 꽃을 든 남자가 아니라 꽃을 죽였다 살리는 여자다.
초딩시절 농촌 생활이 지금 취미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방학 숙제로 식물 채집이나 곤충 채집이 있었는데 늘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생물시간을 참 좋아했다. 모든 식물들이 작은 씨앗 한 톨에서 탄생되는 과정을 늘 세심하게 보는 편이다. 색다른 것이 있으면 어디를 가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때로는 식물들과 대화를 해 보는데 활짝 웃고 있는 꽃들에게 내 기분이 다운됐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기분을 업 시켜주니 가까운 곳이라면 늘 시선 집중이다. 자연의 모든 것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압화의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천연색이 가장 좋으나 재료에 따라 물감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 모든 꽃들과 식물, 나무껍질, 뿌리, 과일 껍질, 채소, 씨앗도 재료가 될 수 있다. 칡잎이 모자 옷 신발이 되기도 하고 말려도 촉감이 부드러운 람저우어는 토끼 귀가 된다.
누구나 한번쯤 책갈피에 네잎 클로버나 물이 잘 든 단풍잎, 은행잎 등을 말려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압화의 원조라고 할까
마음만 부자였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꿈만 많았던 때가 있었다. 예쁜 편지지에 잘 말린 꽃잎이 찢어질까 염려 속에 좋은 글귀를 누군가에 보내며 행복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내게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은 아파트라 실내의 갇힌 화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여건이 되어 흙과 좀 더 가까운 전원생활이 주어진다면 말려 놓은 예쁜 꽃씨를 뜰에다 심고 가꾸며 정원을 넓히고 싶다. 낯선 행인이 우리 집을 지나칠 때 대문을 기웃거리며 “사진 한 컷 찍어도 될까요?”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압화를 이웃들에게 무료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