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안과 밖 박경미 수필가·부곡동 화성아파트 누구에게나 한 가지쯤 자신만이 앓는 남모르는 병이 있겠지만 나에게도 이맘때만 되면 도지는 병이 있다. 시간만 나면 시내를 벗어나 근교로 차를 몰고 나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다. 이 고유가 시대에 웬 드라이브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한적한 농가나 가로수, 낮은 산 중턱에 있는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을 보는 일은 내게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것도 아니라 감나무에 특별한 향수가 어린 것도 아닌데 어디엘 가더라도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는 일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들마다 가을을 느끼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에게 가을은 감나무에 달린 감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런 병을 앓는 내게 지난 해 아파트 일층으로 이사 온 일은 하나의 기쁨을 더해주었다. 안방 베란다 앞과 작은 아이 방 앞에 각각 한 그루씩 두 그루의 감나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유난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내게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앉아서 매일 내가 좋아하는 감나무의 감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남 몰래 들떠 있었다. 지난 가을 일 년 내내 들떠 있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집 앞 감나무엔 감이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해 거리를 하는 가보지”라는 말을 듣고 내심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올해는 정말, 정말 하면서 봄부터 조바심 내며 감나무를 지켜보았다. 나의 이 마음을 알았는지 여름부터 감나무에 새파란 감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 주황빛을 조금씩 더해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감 표면에 하얀 솜털이 뭉쳐있는 것 같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병든 감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 저 감나무는 창밖에 있는 것이었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파트에 살지만 화초를 좋아하는 편이라 베란다에 서른 가지 정도의 크고 작은 화초를 가꾸면서 종류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사나흘에 한 번, 심지어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물주는 일이랑 소근 소근 대화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병이 들도록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사람만 많지 정작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곳에 있는 서러움을 달래느라 병이 깊어졌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내 즐거움만 생각하며 감이 탐스럽게 열리기만 바랐던 이기심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랬다. 알게 모르게 ‘안’과 ‘밖’이라는 구분을 너무 심하게 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내 가정, 내 남편, 내 아이라는 안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볼 수 있는 밖을 보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멀리 아프리카와 몽골의 아이들에게 약간의 후원금을 매달 보낸다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전화기 들고 ARS 성금 눌러 준다고 내가 밖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니지 않았나.
며칠 전 국민배우 최진실의 자살사건이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이런 일 또한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나와는 관계없다고, 안이 아니라 밖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너무 소홀히 넘겨 버리는 우리의 냉정함이 이런 일들을 불러온 건 아닐까?
병들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라도 한 개 쯤은 따먹을 법도 한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감나무에서 방금 또 하나의 감이 떨어졌다. 나무 밑을 보니 떨어져 널브러진 감의 잔해들로 얼룩덜룩하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떠 올리며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내 감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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