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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정부, 미군을 위한 포주(抱主)였다"

NYT 보도, "내몸은 내것이 아니라 정부와 미군의 것"
최도철취재부장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09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각) “전 매춘부 한국과 미국 기지 인근서 성관계”라는 기사에서 과거 한국 정권은 한국 매춘 여성들에게 미군과 성관계를 맺을 것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기사 첫 머리에서 “한국은 한국에서 끌려온 한국 여성의 강제 노예와 매춘굴에서 일본 황국군을 강제 봉사하게 했던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추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 일본정부의 책임을 두고 일본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며 수년 동안 비난을 해왔다”고 시작했다.

그러던 한국에서 지금은 한국의 일단의 전 매춘부들이 또 다른 형태의 모욕을 들어 과거의 한국 정부의 일부 지도자들을 향해 비난했으며, 일부 한국 지도자들이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고 있던 미군들과 성관계를 독려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과거 매춘 여성들은 또한 과거의 한국 정부와 미국군을 비난했으며,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성관계를 직접 지휘했다고 비난하며 미군을 위해 질병이 없어야 한다며 시험과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폭로했다.

매춘 여성들은 그 시절 한국과 미국 관리들에 의해 매춘을 강요받은데 대해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정신대 문제로 한국 정부가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위선적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매춘 여성들 중 한 명인 김모씨(58)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한국)정부는 미군을 위한 아주 큰 포주(抱主)”였다고 말했다고 타임스는 전하며 이 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은 “한국정부는 미군이 (한국을) 떠날 것을 두려워했으며 미군이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그러한 매춘 강요를 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매춘 여성들은 “(한국)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이용된 일용품으로 간주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또 정부가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하고 관련 에티켓(예절)을 배우도록 지원했을 뿐만이 아니라 관료들을 보내 당시 한국이 외화 부족시절 매춘 여성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도록 독려했다고 말했다.

“(관료)그들은 ‘달러벌이는 애국’이라고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우리더러 지아이(G.I., 미군)에게 가능한 많이 팔라고 촉구했다”고 김모씨는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군과의 매춘관련 전문가는 “미국 군대는 성병이 미군에 전염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기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이른바 ‘캠프 타운’에서 성관계를 통제하는데 관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자극적인 주장의 하나는 “일부 매춘 여성들은 성병을 전염시킬 것으로 생각되는 여성을 감시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군경찰과 한국 관리들이 주기적으로 ‘클럽’을 드나들었다고 말한 것”이며 “그들은 매춘굴에서 미군들이 섹스 파트너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번호표를 달았다”고 말했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매춘 여성은 “한국 경찰은 당시 성병에 걸렸다고 생각되는 매춘 여성을 창문에 쇠창살을 한 이른바 ‘원숭이 집(monkey house)'지하에 가두고 열쇠를 채웠다”고 폭로했다. 그곳에서 매춘 여성은 병이 나을 때까지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그 매춘 여성은 스스로를 이른바 위안부(comfort women)와 비교했다. 위안부란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매춘을 하게 돼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고 있는 여성을 말한다. 자신의 선택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면 강요에 의해서든 어쨌든 매춘 여성들은 ‘정부 정책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한다.

“만일 정부가 그 일에 적극적으로 연루가 됐다면, 한국정부와 미군 양자에 의한 ‘캠프 타운’과 같은 지원이 문제”라고 1997년 발간된 “동맹 속의 섹스(Sex Among Allies)"의 저자인 캐서린 H.S. 문씨는 말했다.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여성부는 전 매춘 여성들의 그 같은 비난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으며 주한 미군 당국은 원칙인 성명을 내고 “인신매매와 매춘과 같은 불법적인 행동을 지지하거나 묵과하지 않는다”고만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군기지 인근의 매춘굴에서 일했던 8명의 여성들과 인터뷰를 했다면서 한국과 미국의 관련 자료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 자료에는 비록 시간의 단편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매춘 여성들 주장들의 상당 부분을 입증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 여성들은 수십 년 동안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이어 “어떤 면에서는 그 여성들의 주장은 놀라만한 일이 아니다. 비록 한국에서는 성을 파는 일이 불법이라 할지라도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미군은 기지 인근에서의 매춘을 묵인해 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술집이나 매춘굴들이 한국의 미군기지 주변 거리에 즐비하게 들어 서 있었다”면서 “이는 세계 어디든 미군기지 주변과 같은 경우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매춘 여성들은 “많은 시민들이 어떻게 그렇게 깊숙하게 정부가 ‘캠프 타운에서의 매춘’과 연루됐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매춘 여성들은 지난 2006년에 그들의 주장이 과거 정부 관리로부터 일부 인정을 받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또 미군과의 연락을 맡은 고위급 연락관으로 알려진 김 모(남성) 전 관리는 “비록 우리가 매춘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매춘에 관여하도록 촉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매춘 여성들에게 국가와 본인들을 위해서는 나쁘지는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의회 청문회 사본을 보면, 적어도 일부 한국 지도자들은 매춘이 필요한 일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면서 “1960년 두 명의 의원이 정부에게 동맹국 군인들이 일본에서 달러를 소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매춘 여성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 신문은 당시 내부무 차관이었던 이모씨는 “정부는 미군을 위한 ‘매춘부 공급’과 ‘오락 시스템’의 일부를 개선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성병 통제는 미국과 한국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매춘 여성들의 주장을 김씨와 문씨(여성)는 지지했다. 그들은 “정부의 협조는 특히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69년 주한 미군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발표를 한 이후 미군 철수에 대한 한국정부의 두려움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TV인터뷰에서 “그러한 생각은 (주한)미군들이 떠나지 못하게 캠프타운에서 손님들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생겨났다”고 말했다.

미국 웰슬리 대학의 문 교수는 “1970년대 미군 관리와 한국 관료간의 회의록은 양국간 (성병) 전염 방지에 관한 글들이 존재한다”면서 회의록은 “병에 걸린 여성을 ‘분리 고립’시키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며, 매춘부를 등록하고 그들에게 의료진단서를 요구하는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등록하지 않거나 의료 검진에 참여하지 못한 매춘 여성들을 양국 공동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1976년 보고서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캠프타운은 존재하고 있었으나 한국 경제가 도약을 하면서 필리핀 여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캠프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당시 매춘 여성들은 그들을 피하는 주류사회로부터 고립됐으며 대부분 그들은 가난했다. 일부는 또 해외로 입양시킨 혼혈 아이(자식)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71세의 전씨 할머니는 배고품 때문에 북한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동두천 캠프타운으로 갔던 때인 1956년 18세의 전쟁 고아였다. 할머니는 1960년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아이를 13살 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입양 시켰다. 현재 미군으로 근무 중인 그 아들은 약 10년 전 할머니를 만났는데 지금은 그 아들을 잊고 산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신문은 다른 사람들의 쓰레기를 뒤져 얻은 물건을 내다 팔아 쥐꼬리만큼의 돈을 벌며 정부로부터 최저 생계비로 근근이 살고 있는 할머니는 “나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나는 아들을 양육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나와 같은 여성들은 한-미 동맹을 위한 가장 큰 희생자들이라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고 말하고 “뒤돌아보면 나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미군의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뉴욕 타임스는 글을 맺었다.
최도철취재부장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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