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관음소심 이성환 수필가 ·광양상사 대표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에 심은 난이 하나 있다.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부산 동래 온천시장의 어느 꽃집에서 버려져 있다시피 한 것을 화분도 없이 산 것이다
난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말라서 버려진 듯 한 것에 지나가다 우연히 눈길이 갔고 잘하면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천 원인가를 주고 샀는데 꽃집 주인이 관음소심이라며 잘 키워보라고 했다.
그리고 김천으로 이사 올 때 가지고 온 것인데 함께 살아온 지가 어언 스물세 해나 되어 큰딸보다 나이가 많고 정도 들게 되었다.
베란다에서 이 난을 보노라면 그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잘 데리고 다녔을까, 또 바쁘고 궂은일과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말려 버리지 않았던가 새삼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말려서 죽이지는 않았지만 키우는 것에 정성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난을 키우는 상식이나 기술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오늘까지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았다.
이따금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꽃이 피지 않는 난일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대나무에서도 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데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아직 꽃 필 때가 되지 않았겠지 하며 ‘너 꽃 피는 날 친구들을 불러서 술 한 잔 할란다’ 하고 곱고 향기로운 꽃이 피기를 믿고 기다려도 보았다. 그렇지만 난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쩌면 쉽게 웃지 않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을 가진 난인 모양이다 생각하고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꽃 피우기를 부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시간이 지나니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는 걸까.
어쩌면 저렇게 꽃을 피우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저 난이 오히려 나를 보고 ‘이성환, 너는 언제 진정 아름다운 너만의 꽃을 피우려는가’하고 되물으며 오히려 내가 꽃을 피운 듯이 좋은 삶을 이루기를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처음 본 감천 백사장에 있는 모래알의 눈부심이 아직도 눈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는데 지나간 시간은 강물처럼 많이 흘러갔다.
아내가 예쁘다고는 생각했지만 젊고 소중하다는 것은 몰랐던 서른살에 이제 아프지 않은 치아가 소중하다는 것까지를 겨우 알게 되기에 스물세 해가 지나갔다. 그동안 젊은 날의 거칠음과 무례함으로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스러운 일도 많았고 철없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사는 것이 소중한 삶인지를 모르며 나이만 먹고 있는 나에게 나의 관음소심은 순백의 맑고 고운 마음으로 오로지 의미 있고 귀한 인생의 꽃을 피우라고 정작 자신의 꽃 피우기를 미루며 내 곁에서 격려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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