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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남편의 약봉지가 다 없어지는 날(정춘숙.주부)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22일

살며 생각하며
남편의 약봉지가 다 없어지는 날
정춘숙
(주부·부곡동 화성아파트)


 


 앙상한 나무 가지들이 겨울의 정면에 서서 얼마나 용감한지 며칠 매서운 바람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바람이 무섭다고 온몸을 흔들며 구원 요청을 하는 것이 맘에 짠하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저 작은 나무 가지처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살아 왔을 것인데 요즘의 내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엔 부모님의 그늘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생활의 전부를 해결하며 자랐을 것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또 나의 기둥인 남편에게 어깨를 기대며 살고 있다.


 마흔을 넘기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 가끔 미안함마저 들게 한 적도 있다. 가족의 바람막이가 되어 묵묵히 바람을 막아주는 남편의 등이 오늘따라 무거워 보인다. 얼마 전부터 속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병원엘 다녀와선 위가 안 좋다며 약을 몇 봉지나 들고 왔다. 애들이 아픈 것만이 나의 가슴을 힘들게 하는 줄 알고 살았었는데 그 약 봉지를 보는 순간 울컥 하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10여년의 결혼 생활에서 아이들이 열이라도 나는 날에는 꼬박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예민하게 생활해 왔으면서도 남편의 건강은 늘 청신호라고 세뇌하며 묵인해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말수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 늘 건강하겠지 별 의심 없이 생활해온 탓에 흰 약 봉지는 내 맘을 어둡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의지를 많이 해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서로의 의견 차이에서 작은 불화로 일어나는 신혼 초기의 심리전들이 지금은 작은 체념과 서로에게 길들여져서 무덤덤하게 생활의 리듬이 잡혀 가는 듯 사는 것 같다.


 연초에 해맞이 가자며 새벽에 내 등을 흔들며 남편은 올해의 목표를 건강하게 살자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새벽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모처럼의 데이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서 따라 나섰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작은 행복감이 벅차오르는 산행이었다. 꼭 잡은 남편의 손이 새벽의 찬기운도 녹여 주었고 다가오는 힘든 시련도 녹여줄 거란 믿음이 강하게 밀려오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늘 기도를 하면서 소원을 빈다. 올 해의 내 소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희망찬 새해 아침의 따스했던 남편의 사랑만큼 건강하게 한 해를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
 큰 욕심을 내 보고 싶지만 작은 것부터 이루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건강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다. 쉽게 생0각해 버리는 우리의 습관적인 안전 불감증을 좀 더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족들의 생활을 등에 업고 일터로 나가는 남편의 아침 출근길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건 이제 나도 서서히 남편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는 것 아닐까. 상대방의 맘을 알아준다는 건 건강한 사고와 몸이 뒷받침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서운 찬바람을 정면에서 막아주는 내 남편의 등이 가슴에 찡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습관이 되어 버리면 뭐든지 알지 못하듯이 작은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남편의 약 봉지가 다 없어지고 웃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래본다.


 추운 날씨여서 가끔 걱정이 되는 날이 가끔 있다. 사랑의 메시지를 휴대폰에 의지해 남편에게 전해 본다. 서툴고 표현이 무뚝뚝하지만 사랑이 따스하게 전해져 온다.


 “춥제 ㅋㅋㅋ”
이 세상 어떤 달콤한 낱말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남편의 특허 문자가 내게 작은 행복감을 선물해 준다.


 저녁엔 남편이 좋아하는 청국장을 보글보글 맛나게 끓여서 식탁에 올려야겠다. 아이들에게 콩이 좋다며 많이 먹으라고 말해줄 남편의 따스한 웃음이 기다려진다. 그 웃음을 일 년 내내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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