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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작은 시무식(이우상)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22일

칼럼
작은 시무식
이우상
(수필가 ·한일여교 교사)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밤 12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라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던져 놓은 떡밥 - “차가운 날에는 산이 제멋인데 바람 쐬러 안 가요?”-에 구미가 조금씩 당겨간다. 이윽고 입질이 나를 끌어당긴다.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한해의 성찰과 새해에 대한 다짐을 하지만 연초가 되면 혼자서 1년 365일을 아무 탈 없이 무사하게 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까운 곳을 찾아 산행을 해왔는데 오늘은 뜻밖에 아내가 먼저 제안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가벼운 행장 차림으로 오랜만에 가까운 황악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직지사 경내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먼저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고들 있다. 우리는 곧장 등산길로 접어들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모두가 낮 익고 까다롭지 않았다. 어제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길에 쌓여 있다.곧 바로 풍경이 바뀐다. 좁다란 길을 놓고 낭떠러지 발아래 보이는 바위들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오랜 만에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산길을 걸으니 설렘과 기대와 긴장은 없으나 포근하고 아늑한 여유는 넘친다.


 산보하는 기분으로 산행의 묘미를 느끼는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 떡갈나무의 가지들이 한겨울을 거뜬히 이겨내고 겸손히 앉아 있다. 산에 올 때마다 배우고 가는 것은 겸손이다. 변덕이 없고 속에 오만가지 보물을 갖추고도 화려하거나 거만하거나 교활하지 않고 수수하며 겸손하다. 그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나 이것을 깨닫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 쭉쭉 뻗어 오른 자태들 사이로 떨어지는 눈을 보자니, 칙칙한 세상을 아무 말 없이 순백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바위 위에도, 헐벗은 나무아래 떨어진 낙엽 위에도 겨울의 진수를 한껏 느껴보라고 감추어 주는 눈이 더 사랑스럽다.


 정초에 하는 나만의 규칙이 또 하나 있다. 시작부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절대 쉬지 않는 일이다. 여기에는 365일, 인내의 시간으로 버티어 나가자는 나만의 의지가 담겨있다. 참고 견디는 작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내 심지에 불을 붙여야 1년이 가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산행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가파른 산길, 그러면서 보여 지는 먼 산의 풍경에 위안을 삼으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정상 부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바위틈 소나무가 보이면 올라 올 만큼 올라온 것이다. 어디서 말소리가 들린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일행이 우리보다 먼저 정상에 와 있다. 3시간 여 만에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에서 살든 이렇게 산을 타든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 없는 가 보다. 어린애들이 금방 친해져서 노는 것처럼 주거니 받거니 말을 건네고 서로의 추억을 담아 주는데 아낌이 없는 것을 보면 산은 정령 나만의 것은 절대 아니다.매년 이러저러한 일들을 잘 이겨내고 한 해, 한 해 지나온 것처럼 올해도 그렇게 나의 작은 소망을 이곳 황악산에 남겼으니 더는 욕심이 없다. 무엇을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빌러 오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산세. 앙상한 나무들이 겨울의 애잔한 바람을 맞으면서 겨울을 넘기듯이 그들을 지켜보면서 겨울을 견디는 자태를 하나씩 담아 내려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데 화려한 사방팔방의 길보다 조용한 외길에서 인생의 겸손을 배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하산하는 것으로 금년을 이렇게 아내와 함께 조용히 작은 시무식의 막을 내렸다. 이 작은 시작이 나의 한해를 책임지리라 여기며 산 아래 식당에서 순두부를 한입 뜨자 뜨끈함이 좋다. 따끈함 속에 겨울의 깊이가 얼마나 와있나 여기며 내 한 해의 시작을 이렇게 출발했다.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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