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마을이야기(184) 부곡동편 부곡동은 조선시대까지 김산군 김천면으로 속한 원골과 금릉면으로 속한 부곡(가매실), 원골, 문지알, 고래실 등 4개 마을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 이들 마을을 합하여 부곡동(富谷洞)으로 고쳤고 1962년 1,2동으로 나누었다가 1983년 다시 합해졌다.
▷부곡(釜谷),가매실
부곡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된 가매실은 오늘날 시민탑삼거리에서 그랜드호텔까지의 고성산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조선시대초까지 굴곡부곡(屈谷部曲)으로 불린 큰 마을이 있었다하여 부곡동(部曲洞)으로 불렸고 또 주변 산세가 가마솥을 닮았다하여 가마실 또는 가매실이라 부르고 한자로 가마솥 부(釜)자에 골곡(谷)자를 써서 부곡(釜谷)이라 적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다 1914년 주변 마을들과 통합하면서 부자마을을 만들자는 뜻으로 가마부(釜)자 대신 부자부(富)자를 써서 부곡동(富谷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 금강사에서 바라본 가매실 일대
▷원골(院谷)·원동(院洞)
서부초등학교로부터 고성산 방향으로 깊숙이 자리한 원골은 우측의 양지마와 좌측의 음지마 등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동이라는 마을의 지명은 조선시대말까지 마을입구에 남원(南院)이라는 관용숙소가 있음으로 해서 원동(院洞)또는 원골(院谷) 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또 이 마을 중앙에는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1869-1943)선생을 제향한 원계서원(遠溪書院)이 자리잡고있다.
▲ 원계서원 전경
송준필 선생은 한말의 성리학자로 한일합방 후 고향인 성주에서 3.1운동을 펼쳤고 파리장서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일경의 눈을 피해 1923년 원동에 은거하며 원계서당을 개설해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전념하다 1943년 타계했다.
1986년 서원내에 세운 숭덕사의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이다.
▷문지알(聞知謁)
문지알은 현재의 아주아트빌에서 주공아파트 사이의 마을로 옛날 고성산 봉수대에 봉화가 오르면 산밑에 있는 이 마을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제일 먼저 알 수 있다 하여 들을문(聞)자에 알지(知), 아뢸알(謁)자를 써서 문지알(聞知謁)이라 했다고 알려진다.
일제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문지알의 발음이 어렵다 하여 음이 비슷한 모지(毛之)라고 적는 바람에 모지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래실
김천고등학교와 주공아파트를 지나 철도 굴다리 직전에 좌측으로고성산 끝자락인 파고산과 당산 아래에 자리한 고래실마을은 정확한 마을의 내력은 알 길이 없으나 조선시대말까지 김산군 금릉면으로 속했던 큰 마을로 전해진다.
고래실이라는 특이한 지명은 파고산에서 흘러내린 앞산이 고래의 등처럼 미끈하게 생겼다하여 고래실이라 했다고 한다.
또 달리 파고산과 당산 사이에 자리한 마을의 지형이 아궁이에서 구들장으로 불이 올라가는 불구멍의 순우리말인 “고래”를 닮았다하여 고래실이라 했다고도 전하는데 인근의 가매실마을이 가마솥의 지형에서 연유된 것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있다고 할것이다.
마을 통장 최용호(59세)씨에 따르면 원래 앞산이 주공아파트와 굴다리를 지나 들판앞까지 이어져있었는데 1905년 경부선철도를 부설하면서 앞산을 절개해 그 흙으로 주변 저지대의 철로를 복토하는데 사용했다고 전한다.
▲ 마을 앞산에서 바라본 고래실 마을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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