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목욕탕에서 생긴일 강순희 (주부·부곡동 우방아파트) 얼마 전 일요일에 혼자 목욕탕을 갔는데 탕 안은 똑같이 벗은 모습으로 복잡하기만 했다.
딸들을 데리고 갈 때는 알아서 등을 밀어주는데 혼자 갈 때는 등을 대충 밀면 목욕을 덜한 기분이 든다. 탕 문을 들어서면 먼저 빈 곳을 찾아보는 게 일이다. 그 다음은 머리를 감는 사람이나 샤워를 끝낸 사람, 아니면 목욕 바구니를 정리 하는 사람한테 가서 뒤에 누구 있냐고 물어 본다. 일단 자리를 잡고 나서는 마음 편히 탕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나이에 상관없이 등을 같이 밀자고 하면 “예, 그러세요.” 다 밀고 나면 “고맙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한다. 빠글빠글 짧은 파마머리 아주머니를 만나면 엄마의 연세들이라 그런지 거절하지 않는다. 그날은 등만 밀면 목욕이 끝나서 옆자리 60대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 등 좀 같이 밀면 안 될까요?” 얼굴을 보니 기대와는 달리 “나는 등 밀어서 안 해도 되는데?”하고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벗은 상태에서 맥없이 거절을 당한 기분은 별로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등 밀기 하자면 OK사인이 왔다 가는데 ‘좀 밀어 주면 안 되나?’ 그건 다만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내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 아주머니 얼굴은 좀 어두워 보이고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거절당하자 오늘은 내가 찜을 잘못했구나 싶어 마음을 돌렸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던 80대의 체격이 좋은 할머니가 “새댁이 내 밀어 주꾸마. 이리 앉아 보래.”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 앞에 등을 맡기기는 너무 미안하지만 탕에서 할머니한테 도움을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할머니는 자기보다 더 젊은 아주머니가 못 마땅하신지 “등짝 좀 밀어 주면 어떠노?” 하며 내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밀어드려야 하는 건데 할머니는 다 하셨다며 기꺼이 내 등을 밀어 주셨다. 어디서 그런 힘이 발산되는 것인지 시원스럽게 등을 밀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는 가실 때도 처음 본 나에게 “새댁이 뒤에 오게. 나 먼저 가꾸마.” 인사까지 하고 가시는 것이었다.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는데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이지만 인생을 즐겁게 살아오신 분 같아 노년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저 할머니는 다른 누구에게나 그러셨을 것이다. 아쉬운 소리도 사람 가려가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목욕탕에서 생긴 일을 자초지종 얘기했더니 남편은 “그냥 대충 밀고 다음에 애들하고 갈 때 제대로 밀면 되지. 당신이 잘못했네.” 서로의 입장 차이랄까? 그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해 놨는데 언제 탕에서 만나면 0순위로 밀어 드려야겠다. 할머니의 기억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잠시 다른 할머니로부터 정을 느껴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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