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에서는 김수환(87)추기경이 선종됨에 따라서 5일장으로 치루고전국4곳에서 분향소를 마련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김천시 황금성당이 선정되어 12:00부터 조문객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수환 신부가 첫 사목 생활을 시작한 곳은 경상북도 안동성당(지금의 목성동 주교좌성당)이었다. 이어 1953년 4월 천주교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비서, 대구교구 재경부장, 해성병원 원장을 거쳐 1955년6월에는 경상북도 김천성당(지금의 김천 황금동성당) 주임 겸 성의 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다.
2009년2월 16일 오후부터 급격히 호흡 곤란과 혈압이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어 의료진이 응급 조치에 나섰지만, 결국 오후 6시 12분 경 강남성모병원에서 향년 87세로 서종했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5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김보현은 천주교를 믿다가 무진박해때 충청도 연산에서 잡혀 순교하였을 만큼 집안이 대대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의 집안이었다. 그의 부모는 8명의 자녀들이 전부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넷째형 김동한(가롤로)와 김수환만이 그 꿈을 이루었다.
김수환의 나이 5살때 경상북도군위군로 이주하였고 군위보통학교(지금의 군위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하였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한 김수환은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서울교구의 소 신학교였던 동성상업학교(지금의 동성고등학교)로 편입하여 계속 학업을 하였다. 1941년4월 김수환은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조치 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했으나 독립투쟁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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