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쟁 사회와 문명의 그늘 배창환 시인 아이들이 새벽같이 학교에 온다.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틈만 있으면 책상에 엎드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밤늦게까지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도 모자라 10시 이후에는 또 독서실 차를 타고, 아니면 학원 차를 타고 ‘부족한’ 공부를 하러 갔다가 집에 가서 또 못다 한 하루치 분량의 공부를 더 하다가 새벽 한시나 두시가 넘어서야 잠을 자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마치 잠 덜 자기 경쟁을 하는 것처럼. 이 아이들의 혼곤하고 지친 나날 위로 무심한 시간은 무표정하게 흘러간다. 만성 피로증후군-저 증상은 수능 치는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고단한 하루 생활 그림이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하고 싶은 것,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 또 당연히 그 나이에 누리고 싶어 할 만한 일, 낯선 곳으로의 여행, 독서, 운동, 폭넓은 사귐, 체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가는 정신적인 성장과 관련된 일 등을 모두 유보하고 포기하면서, 오직 수능 시험 하나에 매달리며 살고 있다. 일요일 날 친구와 기차를 타고 하루쯤 다녀오는 여유조차도 이 아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메마른 생활에 익숙해 있다. 무기력하고 황폐하다고 하는 말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란 말이 있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돌아볼 추억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황금 같은 청소년 시절을 너무 빈약하고 단조롭게 교실에서만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이,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지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정책을 마련하고 펼쳐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무섭다는 느낌마저 든다.
요즘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꿈이란 것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를 어떤 직업이 안정적이며, 어떤 직업을 구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강박 의식이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각박해진 사회가 아이들 마음속까지 밀고 들어온 결과다. 꿈이 없는 청소년들에게서 장차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혹하리만큼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입시 경쟁에서 ‘혼자 살아남기’ 경쟁에서 얻을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다. 사회의 기본은 남을 배려하는 데서 길러지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양보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염치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경쟁을 줄이고 기본을 세우는 교육이 국가와 사회에서부터 입안되고 가정과 학교가 몸으로 실천해야 할 터인데, 그런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교육과 경쟁을 부추기는 듯한 정책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람에 대한 예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 사회는 결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물질문명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경쟁 사회보다 전통 문화와 농업 목축업 어업 같은 생산양식이 남아 있는 산간이나 섬의 평화로운 오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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