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꽃피는 시절
이우상(수필가ㆍ광기교회 장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앞을 봐도 꽃이요 좌우전후 어딜 봐도 꽃 천국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꽃들을 조물주께서 긴 겨울 동안 어디에 숨겨뒀다가 일시에 이렇게 형형색색의 아르다움을 흐드러지게 펼쳐 놓고 당신의 솜씨를 천하에 자랑하고 있다.
그냥 무작위로 무질서하지만 너무나 조화롭게 들어부어 놨다 고나 할까. 이 놀랍고 오묘한 신비로움에 그저 감탄사가 연발될 뿐이다.
꽃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항상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신비의 능력을 간직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기쁜 일에도 꽃이 등장하고 슬픈 일에도 꽃이 동원된다. 기쁨을 더욱 배가 시키고 슬픔을 위로하는 청량제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꽃은 우리 생활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장식해 준다. 꽃은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등장해야 하고 또한 필 시기에는 꼭 피어야만 한다.
만약에 꽃 피는 철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어떨까. 너무나 삭막하고 쓸쓸해 온 천지가 회색빛으로 도배를 한 지옥이 연상될 뿐이다. 꽃 없는 봄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선물로 주셨건만 우리 인간은 때로는 세상일에 시달려 코앞의 것만 내려다보면서 주머니의 돈만 헤아리느라 옆의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잠시 세속을 피해 조금은 자연에 곁눈질을 하면서 쉬어 가는 여유에 머물러 보는 일 또한 즐거운 낙(樂)인데 다행히 오늘처럼 꽃에 대한 아름다움과 놀라움, 꽃을 피우게 하신 하나님께 고마움을 가지게 되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몇 년 전 매계백일장에 학생 인솔 차 잠시 틈을 내 조선 성종조 매계 조위 선생의 숨결이 어린 곳 봉계 율수제에 참가해 놀라운 대 자연의 꽃 향연을 만끽하면서 권숙월 시인과 함께 잠시 담소를 나눈 일이 떠오른다.
엄청나게 쏟아 부은 꽃들을 대하면서도 무덤덤한 나에게 한 마디 던지는 그 말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비 오듯 뒤덮는 수많은 꽃잎들을 보더니 ‘신이 내린 나비의 율동 같다’면서 감탄을 했다.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 역시 10권의 시집을 출간한 권 시인의 놀라운 지혜의 표출이다. 하기야 초승달을 ‘하늘 입’으로 표현할 만큼 번뜩이는 위트의 창출자가 아닌가?
이맘때만 되면 다시 한 번 생각나는 이유는 너무나 좋은 계절이어서인지 모르겠다. 혹 성질 급한 이는 꽃을 대할 때 감상하려 하지 않고 먼저 꺾으려 든다. 어느 시인은 꽃에 대한 감상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문향(聞香)이란 ‘꽃이 놀라지 않도록 알맞은 거리를 두고 꽃향기를 눈으로는 보고 귀로 들으면서 맡으라’고 했다. 얼마나 멋있고 운치 있는 말인가? 꽃향기를 맡지 말고 보면서 들으면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뜻이리라.
어떤 사물을 가까이 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간다고 하는데 꽃을 가까이 하면 꽃을 닮아가게 될 게 아닌가? 우리는 가끔 인생을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쁘게 잘 생긴 가람을 양귀비에, 봉사와 희생을 생활신조로 살아가는 사람을 백합화에, 정갈하고 단순하며 깨끗한 사람을 목화에 정열적인 사람을 봉선화에, 수심이 많은 사람을 수선화에, 심청을 연꽃에, 그런가 하면 춘향을 옥중화(獄中花)로 칭하고 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일리 있는 그럴듯한 표현이다.
이렇게 보면 꽃과 인간은 어떤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겠다. 인간이 여러 종류가 있듯이 꽃 또한 그 수가 엄청나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아름다운 빛깔과 독특한 향기를 자랑한다.
사람 또한 꽃처럼 각기 특색 있는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살아가고들 있다 비록 드러나지 않더라도 외진 들길에 수줍음 안고 홀로 피어 있는 야생화 한 송이에도 눈길 한 번 주는 배려를 베푸는 삶 또한 향기롭고 아름답다. 꽃피는 이 좋은 계절에 어울리는 향기 한줄기라도 피우는 삶이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