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남 객원기자의 책 이야기 그 두 번째 ‘두근두근’ -권혁웅 산문시 아, 그이가 내게 걸어왔어요.
‘두근두근’이 발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란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권혁웅의 ‘두근두근’은 몸의 각 부분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산문시이다. 1991년부터 17년 동안 써두었던 시작메모, 일기, 독서 노트를 정리했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은 재미난 이야기 같으면서도 읽는 내내 놀랍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국어사전에는 ‘몹시 놀라거나 불안해 가슴이 자꾸 뛰는 모양’을 ‘두근두근’이라고 돼있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불안보다 아주 설렐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더 두근대지 않던가! 권혁웅식으로 사전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쨌든 시는 구질구질한 설명보다 입에 넣고 오래 씹어봐야 쓴맛, 단맛을 알 수 있다. ‘파경’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얼굴빛도 좋고 나이도 젊고 옷도 많았지라고 여자는 말했다. 이제 당신과 같이 나눌 거울은 없다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 파경이란 거울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사랑하던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한다는 것. 서로에게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기미’
어사전을 찾아보니, “병이나 심한 괴로움으로 인하여 얼굴에 끼는 거무스름한 점”이라 나와 있다. ‘심한 괴로움’이란 말에 한참을 머물렀다. 기미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라 괴로움 때문에 기미가 끼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화장이 감추는 게 기미가 아니라 괴로움이었다니! ‘아름드리’
검버섯은 노구(老軀)에만 붙어서 핀다. 식용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신이 살아 있는 아름드리 거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증거다. ‘불태운 책과 감춘 책’
장실에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옛 일기를 불태우는 사람이 꼭 있다. 슬픔이 맵거나 독한 것이다. 그보다 약한 사람들은 그 기록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라면 박스나 큰 서랍에 넣고 잠가버린다. 예컨대 이런 사람.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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