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가슴 꽃 카네이션 강순희 부곡동 화성아파트 다시 스승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연령에 관계없이 이날이면 더욱 좋은 감정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스승이 떠오르게 됩니다.
저는 힘이 들 때면 현재 성의여고에 재직하는 김원식 선생님을 잠든 기억에서 꺼낼 때가 있습니다. 100m 단거리 국가 대표로 활동하다 저의 모교로 처음 교사 발령을 받고 부임하셨을 때 인연이 된 선생님입니다.
지난 주 김천신문 제900호에 ‘한민희, 전국종별육상대회 높이뛰기 우승’ 기사를 보았을 때 제자 육성에 지금도 열정을 쏟고 계시는 선생님 모습에 너무 기뻤습니다.
한민희는 저의 둘째 딸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입니다. 1980년대 운동과 공부의 두 길을 걸어가면서 선생님 앞에서는 언제나 모범생으로 칭찬 받고 싶었습니다. 늘 불안한 가정 형편에 학교생활이 더 좋은 저에게 교정의 플라타너스는 희망을 주는 나무였고 선생님은 늘 가까운 곳에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잦은 부름으로 교무실 출입은 편했고 시험을 보고 나면 전 학년 체육 과목 반 평균을 내는 일은 늘 제 몫이었지요. 그럴 때 저의 교실로 찾아오시어 친구들 앞에서 주판알 튕길 기회를 주시며 기를 살려 주셨습니다. 집에서는 공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 시합 때 빼고는 야간자습을 빠지지 않는 게 저와의 약속이었고 선생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늘 혼자였습니다. 학생들이 떠나간 텅 빈 운동장 벤치에 앉아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꽃과 하늘을 바라보며 일기를 친구로 대신하곤 했었지요.
돈을 벌기 위해 상과를 진학했지만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 8개월간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셨지요. 꼭 이 맘 때입니다. (엄마는 22년간 고생하시다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좌절로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었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지. 졸업을 하지 않으면 취직하기도 어렵다”고 강조를 거듭하셨지요.
여름, 겨울 고된 합숙 훈련과 가난한 학생의 기숙사 생활은 스케줄에 뛰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 비하면 시간 투자를 공부하면서 체력 단련도 한 셈이지요. 선생님이 특별히 기숙사 독방을 배려하시어 학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는데 동료 선수들 앞에서는 늘 미안했습니다. 그 방이 아니었다면 긴 터널에서 빛을 보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분기 수업료가 8만3천원이었는데 3년간 1급 장학생으로 수업료를 면제 받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졸업과 동시 신용협동조합에 근무하다 결혼해 두 딸을 얻었고 출발선에서 지각 결석 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반을 던질 2.5m 원 안에서 저의 꿈을 키웠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 남겠습니다.
선생님! 그때의 제자들 연락이 끊겨 서운하시겠지만 하루 빨리 선후배들 연락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이고 싶습니다. 모두가 변한 모습으로 세월이 묻어나겠지요.
가까이에서 카네이션 가슴에 달아 드리지 못함을 이해하시고 가장 힘든 시기의 감사함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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