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 혹은 천재? 김용대 변호사 한국자유총연맹 김천시지부장 1979. 10. 26.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부장의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45미터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것은 비극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들은 30년전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생전에 말씀하였다. 바보라는 별명이 좋다고. 그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색한 두뇌로 공부를 잘했지만 너무 가난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년 동안 농사를 지어야 했던 소년 노무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고향의 가난한 처녀 권양숙 여사와 결혼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쓴 결혼을 했다. 그는 독학으로 29살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무모한 도전은 성공했다.
청년 노무현은 순수와 열정. 사랑을 위해서 매진했던 바보였다. 그는 변호사로서 편안한 길을 버리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42세에 국회의원이 되어서 5공 청문회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매섭게 추궁했다. 국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었다. 그는 편안한 길을 가지 않고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정치적 신념이 맞지 않아서 3당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고 무모하게 부산선거에 도전했다가 내리 3연패를 했다. 2000년 노무현은 바보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눈물을 흘린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무모하게 도전했다. 그는 단기필마로 도전했지만, 극적으로 성공했다. 그는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이 되어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수도권과 지방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권력기관을 장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바보일 수도 있지만, 헌법에 따른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지만 여기에서 바보가 아닌 천재 노무현의 기질을 지금 읽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조인이 된 후 약 30년간의 인생은 소수파로서 도전하고 쓰러지고 또다시 재기하는 승부의 연속이었다. 그는 고난의 역정 속에서도 자신만이 추구하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는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을 키워 준 봉하마을 뒷산으로 돌아가 영면에 들 것이다. 그가 몸을 던진 것은 45미터이지만, 그는 우리 세상에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가 추구했던 가치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이 없고 온갖 차별이 없는 민주주의가 숨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농민으로 봉하마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농사짓고 있습니다. 저희 집 곳간에 쌓아둔 돈도 없습니다. 저의 처가 아들, 딸 집사줄려고 고향선배로부터 스폰서 받은 거 죄송합니다. 저를 정치적으로 핍박하는 권력자에게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명예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을 존경했다. 링컨은 남부의 반대를 무릎쓰고 1861년 노예해방선언을 함으로써 남북전쟁을 치루었다. 그는 승리했지만 얼마 후 암살되었다. 링컨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던 노무현식 대통령 문화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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