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아이의 눈을 돌리도!
이희성
주부· 신음동 그린빌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는 남편의 손에 묵직한 수박 하나와 비닐꾸러미가 들려 있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농사일과 가사에 모두 손 놓을 형편이 되자 안정 중인 어머니와 아이들을 챙겨야하는 나를 대신해 시댁으로 퇴근을 하다시피 하는 남편이다.
시아버지의 저녁밥을 솥에 안치고 설거지까지 하며 허드렛일을 마무리 해주고 오는 남편. 일요일 아침, 피곤해 보이는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른 집들은 리모델링에 베란다 트고 멀쩡한 조명기구까지 애들 시력 보호한다며 교체해 버린다는데…”
원래 말없는 사람이니 불현듯 쏟아놓는 공격에도 즉각 반응을 보이진 않지만 10년을 살고 보니 굳어진 안면 근육만 보아도 심기가 불편함을 알겠다.
하지만 차라리 큰 소리로 짜증이라도 내면 뜨끔하여 조용히 있을 텐데 그는 절대 그런 법이 없다. 잔소리를 해 놓고도 몸이 다는 쪽은 오히려 나다.
“애들 시력 말 아니게 떨어졌다고 형광등 좀 갈아 달라고 했잖아요!”
힘 든 남편을 위해 좀 더 여우스러우면 좋으련만 버럭, 고놈의 속아지를 내고야 말았다.
수명이 다했는지 가물가물 사위어가는 등을 간 지 하루 만에 또 다른 게 말썽이어서 전날 저녁 시댁에 있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올랐다. 집 안 일엔 전혀 개의치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수박을 받으며 비닐꾸러미를 가리켰다.
“그건 뭐예요?”
“형광등”
“저건 어제 갈았으니까, 이쪽 두개만 갈면 되요.”
“싹, 다 갈 거야.”
여전히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다.
“어제 교체한 것도 빼버리겠다는 거야?”
“…”
이쯤 되면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다. 꼬일 대로 꼬인 저 속내가 스스로 정화 되자면 얼마의 시간동안 내버려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새 것은 따로 챙겨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써야지 생각하는데
“ 촌에 갈 때 우사에 갈아 끼우면 되니까, 잘 놔 둬” 한다.
전구를 교체한다고 딛고 선 식탁을 제자리에 밀어 넣기도 전에 얼른 불을 켰다.
“와!!”
우리가 어렸을 때엔 안경을 쓴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시골이어서 공기 좋은 산과 들의 영향인지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아주 어린아이들도 이 시력의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한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온전한 성장이 이루어진 후 서서히 공부하던 우리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겐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무작정 눈을 쉬게 하기엔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아이들. 각종 문명 기기와 컴퓨터의 발달로 학교에선 초록 칠판 대신 큰 프로젝션 TV로 공부 하고 학원에선 백의민족의 상징처럼 버티고 선 화이트보드에 온 시신경을 충성하고 또 집에선 컴퓨터를 켜야만 영어 학습을 받을 수 있으니 아이들의 눈은 눈부신 백과 흑, 다양한 칼라의 전쟁에 마냥 방치되고 있다.
무엇으로 날로 편리해지는 기기들의 허점을 메울 수 있을까.
불편하다고 쫓겨난 세상의 많은 물리적인 것들과 영원히 친구하고픈 편안한 초록이여 떠나지 말아 줘. 피곤한 아이들의 눈을 지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