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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청 곽광섭과장의 "조마사랑".


최도철취재뷰장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9년 06월 26일
 

조 마


                                                    환경관리과장


                                                      곽 광 섭


조마면은 기원전(82~57) 변한(弁韓)시대에 주조마국(走漕馬國)또는 졸마(卒麻)로 불리우는 국가였다.




조오마! 우리 지역 사투리로는 좋으면! 좋다! 등으로 은연중에  만인의 호감(好感)이 가는 고장으로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형세가 왼쪽주먹 엄지를 치켜세운 형상이며 단연 넘버원이다! 라는 형상과 기상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시의 지도와 조마면 행정구역도를 보면 역시 최고야! 누가 뭐래도! 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골골마다 두루 정기를 받아 면민들은 패기와 기개가 있으며 출중한 언론인 경제인이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지역의 역사를 새로이 쓰는 CEO를 세명이나 기치를 내걸었으며 시민의 지도자로서 백년대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조마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쨍쨍하게 있는 조마면이다.




우리시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고 금릉(金陵)의 지세(地勢)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으나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당 중에 명당(明堂)이다. 금릉군 조마면! 1914년 김산군 조마남면 21개동을 4개동으로 김산군 남천면10개동을 3개동으로 광역화 합면(合面)하면서 김천군 조마면으로 바뀌었으며 강곡동(江曲), 장암동(壯巖), 신안동(新安), 신곡동(新谷), 삼산동(三山), 대방동(大坊), 신왕동(新旺)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1949.8.13 김천군 김천읍(金泉邑)이 시(市)승격으로 금릉군 조마면으로 변경되었으며 1988년 洞의 명칭이 里로 개칭되었다. 군(郡)의 명칭이 금릉군이라 한 것은 1949년 김천시가 김천군(금산군, 지례군, 개령군의 통합명칭)으로부터 분리(8.15)되면서 김천시를 제외한 여타지역을 금릉군이라 했으며 명칭의 근거자료로는 세종실록지리지(1450)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관을 사랑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자기가 사는 고장을 금릉(金陵)이라 했는데 금산군(金山郡)을 비롯 경기도 김포(金浦),전라남도 강진(康津),황해도 금천(金川) 등 네 곳이 있다. 그리고 금릉이란 지명은 옛날 (서기314년)중국 동진이란 나라가 세운 서울을 금릉이라 했으며 나라가 바뀌면서도 이곳에 도읍이 지속됐기 때문에 고도로서 유적이 많고 경관이 아름다워 역대 시인들마다 즐겨 시제(詩題)로 활용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태백의 “금릉봉황대(金陵鳳凰臺)에 올라”가 있다.




이 가운데 “금릉”과 “삼산이수”명칭이 있는데 모두 이 시귀(詩句)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금릉군의 삼산은 세 마리의 새 즉 자고새(鷓),봉황새(凰),매(鷹,응)와 밀접히 관련되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자산(鷓山),봉산(鳳山),응봉산(鷹鳳山)이었다. 자산은 척산(尺山),자산(紫山)으로 표기되고 있고 지좌동의 황산(凰山)그리고 신음동 삼애원(三愛園)의 응봉산(매봉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던 중 김천, 금릉을 상징하는데 적절치 못하다는 여론이 있어 1975년 김천문화원에서 김천시민탑을 건립하면서 삼산을 황악산, 고성산, 금오산으로 개정하였고 1994년 3월16일 금릉문화원 정기총회에서 황악산(黃岳山), 금오산(金烏山), 대덕산(大德山)으로 의결을 하여 지금에 우리시의 삼산(三山)으로 상징되고 있다.




조마의 삼산리(三山里)에는 흰닭뫼(白鷄山469m),신다리산(469.4m),불두산(佛頭山428.4m)삼산이 있으며 또한 삼선천과 남천의 이수(二水)도 있다. 이 지역 선조들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삼산이수의 고을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기위한 흔적과 노력을 엿 볼 수 있다. 대방리(大坊里)에는 대방천(大坊川)의 발원지인 염속산(懕俗山870m)과 연석봉(蓮石峰894.6m)이 있으며 글씨산(540m)자락도 있다. 대방천과 997번 지방도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성주군 경계지역인 살티재 부근에는 옛날에 사기를 굽던 마을인 사점마을이 있고 물방골이란 계곡이름을 딴 수방마을과 버드나무 많은 곳인 버드실, 유촌 마을 그리고 마을뒤쪽의 두둑 위에 들이 펼쳐 있기 때문에 두들개 마을, 물이 옥같이 맑다하여 옥계라는 마을이름들이 유래되고 있다.




또한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이 연중 마르지 않는다 하여 여우내 마을, 무사들이 활을 쏘는 곳이라 하여 성궁이라 했으며 성궁 바깥쪽에 있다하여 뱃거마 마을 등도 전해내려 오고 있다. 신왕리(新旺里)는 조선시대에 김산군 남천면(건천면)에 속한 수왕, 박리, 용암이라 불렀는데 1914년 신계(新溪),송정(松亭),박리(朴里),수왕(水旺),용암(龍岩)을 통합하여 신계, 수왕 한자씩을 따서 신왕동으로 변경 하고 조마면에 귀속이 되었으며 1971년 수왕, 박리 용암을 신왕 1동으로 분동하였다. 곱돌이 마을이 있는데 냇물이 곱돌아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곡강(曲江)이라고도 하는데 하외마을, 영양, 포항의 곡강이 있다고 한다. 신곡리(新谷里)는 고려시대에 성주목(星州牧)에 속한 신곡부곡(新谷部曲)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신곡면의 신석동(新石洞)이 된 후  1906년에 신곡면이 김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 나부,마와,마곡,철수,중리,신석,백화동을 통합하여 김천군 조마면 신곡동으로 그리고 1962년에 나부리, 미아리를 신곡1동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벌소리가 들린다는 나부리(羅浮里)마을이었는데 가제산(667m)서남쪽 산자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남동으로는 꿀재를 거쳐 지레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염속산과 가제산 사이 계곡에서 강곡천이 발원되어 감천을 향해 북류하고 있으며 901번 지방도로가 성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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